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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Sep 06.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경주에서


즉흥 여행이라도 이건 너무 했다. 나의 순발력은 이제 바닥이 난 것인가. 바다를 코앞에 두고 해돋이를 못 봤다. 아침 6시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긴 하는데 일출은 10~20분만 더 일찍 일어났어도 볼 수 있었다. 날씨도 좋았는데 그 생각을 못하다니 바보 같다.


아쉬움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제 드디어 나의 로망 영남 알프스로 떠나자. 우선은 영남 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차박을 한 사람의 글을 보고 어떤 곳인지 가보고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어, 여기 경주 아니야, 경주 한복판에 들어왔다. 경주는 맛집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데 그냥 가기 아쉽다. 여기서 1 박하자. 그리고는 또 검색을 하는데 우리에게 맞는 캠핑장을 찾기가 어려웠다. 열 통이 넘는 전화 끝에 반려견과 카라반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오늘가도 되나요?라는 말을 묻기도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 평일이니 당연히 자리가 있겠지 싶어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하지 않았다. 기쁜 마음에 큰 마트에서 장을 보고 떠났다. 경주도 굉장히 넓다. 경주 시내에서 당연히 멀어지더니 청도 쪽으로 왔다. 그런데 캠핑장 문이 닫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전화를 걸었더니 아까 전화에서 예약을 하지 않았지 않냐, 인터넷 예약만 받는다, 자신은 지금 멀리 있다 등 너무 황당한 말만 한다. 물론 예약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캠핑장의 문이 닫힌 것은 처음이다. 이 넓은 곳에 휴가철에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불친절한 말에 화가 났다. 우리가 차만 가지고 왔으면 이렇게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라반을 끌고 높은 계곡까지 와서 후진하기가 참 어렵다. 그 부분 때문에 남편은 화가 났다. 그런데 다행히 길이 넓어 후진을 하며 조심스레 내려갈 수 있었다. 이 지역은 캠핑장이 많아 다른 곳에 금방 예약을 했다.





이곳은 좀 전에 화가 난 마음을 모두 풀어주었다. 친절하고 시설이 좋고 사람들도 많았다. 나무가 많아 타프를 치지 않아도 되고 다시 바다와는 다른 분위기의 숲 속의 캠핑장이다. 청도까지 왔으니 다시 경주를 가기는 좀 멀다. 오늘은 캠핑장에만 있기로 했다.



"슬픔이여 안녕" 책을 읽었다. 프랑스와즈 사강이 열여덟 살에 쓴 소설이다. 그녀는 이 소설로 일약 스타가 된다. 그리고 인세비로 재규어 차를 산다. 그녀는 속도광으로 큰 교통사고가 나 죽을 뻔했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 치료를 하는 중 모르핀에 중독이 된다. 마약 중독, 도박 중독 등으로 재판을 받게 되는데 나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등등 그녀는 책 보다 사생활이 더 유명하다. 소설을 다 읽고 그녀와 인터뷰한 글도 읽어보았다. 여성의 미모는 독이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또 뛰어난 미모를 가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그런 사실에 나는 그녀의 작품을 가벼운 통속소설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읽어 본 두 소설 "슬픔이여 안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다르게 다가왔다. 소설 작법으로 접근을 해보아도 구성이 탄탄하고 주제도 시대를 앞섰고 문체도 상당히 치밀하고 깊이가 있다.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런 글을 쓸 수가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녀는 파티를 즐겼는데 갑자기 그녀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녀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었다. 자신의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독서광이었다. 그리고 1년~2년 사이에 책을 꾸준히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즈 사강의 스캔들만 주목받는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최근에 다시 재평가되는 것 같고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인기 작가이다. 나는 역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느꼈다. 잘 쓰고 싶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동시에 해야 하는 작업이다.







다른 사람은 나의 인식 대상이 아니라 응답의 대상이라고 한다. 인간관계의 기본이다. 응답하기, 타인의 얼굴에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면을 책임을 지어야 한다. 결국 자기 변화는 타인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남편이 변한 것일까. 내가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변한 것일까.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책 제목처럼 남편은 창문을 넘었다. 카라반의 문은 방충망이 있는 문과 단단한 문 두 개로 되어 있다. 방충망을 뚫고 모기는 들어오는 것 같아 나는 두 개를 열심히 같이 닫았다. 그런데 문이 잠겼다. 열쇠는 카라반 안에 있다. 젓가락으로 해보아도 안 된다. 어쩌지. 갑자기 남편은 창문을 넘는다. 나는 넘어질라 작은 사다리를 꽉 잡았다. 내가 여보 때문에 못살아,라는 말을 한다. 냄비를 태우기를 밥 먹듯 하는 나, 다시는 안 닦을 거야 하면서 닦아준다. 병뚜껑을 못 따 남편이나 아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실수가 많은 내가 남편을 자상한 사람으로 바꾼 것인가. 남편이 원래 자상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도 나는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다. 최근에 부동산 계약을 하고 말았다.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그만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딱 2년만 하고 글을 쓰고 싶다. 남편은 이번에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하면서. 남편이 하라고 한다고 할 나도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의 침묵은 나를 흔들리게 했었다. 이제야 정말 동의하는 말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주변을 산책하다가 천문사 절에 들어갔다. 누워있는 부처 와상을 보고 나는 말했다. 분명히 높이 세우는 작업이 힘들어서 누군가 그냥 누워있는 부처를 만들자고 했을 거야. 이렇게 모든 사물은 상대적이다. 반응하는 타인이 있기에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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