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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Sep 05. 2023

자유롭게 떠나는 카라반 여행

아름다운 울진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는다. 어제는 슬리퍼가 날아가 저 멀리 가서 찾아왔는데 오늘 아침의 신발은 그대로 차 앞에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여름 바다 그 자체이다. 해치와 바닷가를 달리는 로망이 있었는데 해치는 모랫바람이 불자 자연스레 카라반으로 도망가 버렸다. 오늘은 모두 할 수 있다. 푸른 하늘이 화면에 담긴다. 넓은 바다도 황홀하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7~8년이 되었건만 지금껏 카톡 프로필 바탕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던 남편도 드디어 바다 사진으로 바꿨다. 해치가 우리 가족이 된 지 11년이 되었건만 처음 모습 그대로 핸드폰 바탕 사진으로 간직하던 남편, 다른 해치 사진으로 바꿨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바다는 남편을 변화시킨다.







해송숲은 텐트를 치는 구역이다. 화장실과 샤워실 건물 옆에 텐트를 치는 부부가 있다.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을 보니 나의 엄마, 아빠가 생각이 난다. 검소하시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 나는 어릴 적 부모님과 여행을 많이 다녔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 부모님은 짐을 이고 지고 계곡에도 데리고 가고 바닷가도 구경시켜 주셨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존경스럽다. 그 많은 짐을 두 분이서 어떻게 들고 다니셨을까. 그렇게 다닌 여행지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이들 셋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정말 힘들었을 것인데 사실 부모님도 즐기신 것 같다. 젊은 엄마, 아빠는 우리보다 더 활짝 웃고 계신다. 우리가 같이 따라다니지 않는 나이가 되어도 두 분이서 여기저기 소박하게 국내 여행을 다니셨다. 나의 부모님은 평생 사치를 모르셨다. 나는 강남에 살면서 우리 집이 부자라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돈을 인색하게 안 쓰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에게 많이 베푸시고 당신들을 위해서는 쓰지 않았다. 명절은 정말 그들을 위해 음식을 베푸는 날이었다. 지방 곳곳을 다니며 음식을 사 오고 정성스레 요리를 하셨다. 식구도 많아서 음료수도 박스 단위로 사셨다. 나도 이 부분을 자연스레 배워 전국으로 시장을 보러 다닌다.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어서 좋고 그 과정이 재미있다. 저기 두 분들도 이제 막 텐트를 다 치시고 맛있는 요리를 하신다. 너무 보기 좋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여가를 즐기신다. 한 사람은 작은 텐트에서 자고 한 사람은 차에서 자는 이른바 차박을 하신다. 요즘 나이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정리가 되었다. 나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스스로를 한정 지었다. 아주 깊은 마음속에는 자신감이 없는 의기소침한 내가 있었던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그렇게 가르치시지 않았는데 말이다. 사춘기 딸아이를 보고 학교 앞에서 큰 소리로 부르던 어머니, 지각이라는 말에 나를 자전거에 태워 강남 한복판을 달리시던 아버지, 검소하시고 당당한 부모님의 모습이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처럼, 저분들처럼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살자 다짐한다.




가깝게 있는 죽변항의 스카이레일을 타러 갔다. 아주 조그만 기차에 4명이 탈 수 있다. 1~ 2인이 탈 때는 2인 요금을 내고 3~4명이 탈 때에는 4인 요금을 낸다. 바다의 색깔은 옥색에 가까웠고 하얀 거품은 카푸치노처럼 맛있어 보였다. 제주 바다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제주 협재 바다의 색깔에 하얀 거품이 바다 절반을 덮고 있어 색다른 장관을 이룬다. 의자에 앉아 같은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돌아와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절대로 똑같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성류굴에 갔다. 나는 동굴을 좋아하지 않아 입구 작은 벤치에 해치와 함께 앉았다. 입구에는 상점이 한 줄로 있다. 비빔밥을 포장할까 싶어 물어보니 식당이 아니고 물건만 파는 곳이다. 목이버섯, 조, 기장, 미역, 막걸리, 마른오징어를 맛보라고 내미신다. 밥공기에 담겨 있어 나는 식당인 줄 알았는데 시식용이었다. 귀여운 할머니는 막걸리를 한 잔 먹으라고 따르시더니 맛있지요? 하고 안주도 먹어야지 하며 바로 오징어를 입에 넣어 주신다. 해치를 잡느라 한 손만 쓰는 나를 위해 친절을 베푸신다. 물건이 너무 좋아 다 맛을 보고 푸짐하게 샀다. 잡채에 넣는 목이버섯, 서울은 얼마나 비싸게 파나, 여기는 정말 일 년치 먹을 양이 단 돈 만원이다. 자작나무 숲에서 깻잎도 옥수수도 오 천 원어치를 샀는데 정말 양이 많았다. 계속 부자가 되고 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시골개가 되어가고 있는 해치를 바라보았다. 등받이가 없는 노란색 시트의 커다란 평상에 둘이 앉아 있으니 해치가 진돗개로 보인다. 커다란 나무 위에 매미는 정열적인 사랑 노래를 하고 저기 물총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소리도 들린다. 여행 중에 책도 읽지 않고 핸드폰도 거의 보지 않으며 머리를 쉬고 있다.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보는 버릇을 없애고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 좋다. 그러니까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온다. 여행을 잘 즐기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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