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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18. 2023

이제야 읽는 파친코

파친코 속 요셉 이야기 



파친코 소설은 거의 800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다. 수려한 문체나 예술성이 돋보이는 소설이기보다는 귀중한 역사책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근대사를 배경으로 재일교포 4대에 이르는 대서사가 흡입력 있게 책을 이틀 만에 읽게 만든다. 어찌 보면 소설가에게는 가장 어려운 장르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거의 30년에 걸쳐서 이 책을 썼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 작가이지만 일본에서 살게 된 기회에 많은 조사를 했다. 


 1대는 부산 영도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언청이 훈이와 가난한 집 딸 양진이다. 그들의 딸 선자는 고한수라는 유부남을 만나 아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선자는 첩이 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 이를 알게 된 하숙집에 머문 선교사 이삭은 그녀와 결혼하고 아기 노아를 자기 아들로 삼는다. 2대는 선자와 이삭이다. 오사카에 있는 이삭의 형 요셉은 그들을 부른다. 요셉과 그의 아내 경희, 이렇게 넷은 식민지의 조선인으로 차별을 받는 가운데 서로를 의지하며 가난을 이기려고 노력한다. 이삭은 일본 감옥에서 순교한다. 또 원자 폭탄이 터져 요셉은 다치게 된다. 선자와 경희는 시장에서 김치를 팔기도 하고 설탕과자를 팔며 악착같이 아이들을 키우며 고단한 삶을 산다. 고한수는 일본에서 야쿠자로 크게 성공하여 자신의 아들 노아를 위해 경제적으로 도와준다. 3대인 영리하고 성실한 노아는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를 하던 중 고한수가 생물학적 아버지임을 알고 큰 충격을 받는다. 노아의 동생 모자수는 파친코에서 청렴하게 일하여 큰 부자가 된다. 모자수는 유미와 결혼하여 솔로몬은 낳는다. 4대인 솔로몬은 일본에서 국제 학교를 다녔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영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노아의 자살이다. 노아는 일본 학교에서 차별을 받았지만 학업 성적을 우수하게 유지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조선인은 게으르고 멍청하다는 편견을 깨고 주경야독으로 와세다 대학에 합격을 한다. 같은 조선인으로 자신에게 후원을 한다고 생각한 야쿠자 고한수가 생물학적 아버지임을 알고 자신에게 더러운 피가 흐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지방 파친코에서 일하며 고한수가 준 돈을 모두 갚는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살며 가족을 만나지 않는다. 고한수가 끈질기게 노아를 찾으려 애쓴다. 어머니 선자가 드디어 노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겠다던 노아는 그날 밤 자살을 한다. 노아는 이제 더 이상 일본인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맞은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밝힐 수 없었다. 그 순간 가족들이 모두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과 같은 방황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선자는 이 마음을 알기에 아들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노아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 양진의 말대로 고한수는 노아를 죽게 만든 원인이다. 그러나 선자는 성경 속 요셉을 떠올리며 고한수를 미워하지 않는다.  일본인은 전쟁을 일으키고 나쁜 짓을 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모두 남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달라지는 것을 무서워해서 망한 것이라고 가즈가 말한다. 일본은 영국인이나 백인 되고 싶어 하고 한국인과 중국인을 차별한다. 노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비슷한 외모를 가진 동양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서양을 동경하고 같은 인종인 동양인을 차별한다. 4대인 솔로몬은 3년마다 지문을 찍고 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해야 한다. 일본은 근대화로 강대국이 되려는 순간 일본의 정체성을 잃었다.  


 차별을 당한다고 자신의 인생이 형편없이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선자는 그것을 깨달은 것일까. 기구한 삶 속에서도 선자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희망과 사랑이 있었다. 가난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성실하게 일했다. 할머니 선자가 이 사실을 깨달았듯이 손자 솔로몬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파친코의 일을 이어받겠다 결심한다. 아버지가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사업을 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나로 제대로 살 수 없는 것이다. 성경 속 아브라함, 이삭 모두 이방인으로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신을 믿고 늘 희망을 가지며 선을 베풀었다. 조선인들은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자신의 삶을 그 누구보다도 충실히 살았다. 왕과 지도자는 나라를 버렸지만 강인한 민초들은 선조들이 남긴 한국인의 끈질김, 성실함, 따뜻한 정을 몸으로 실천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차별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별은 잘못된 것이다. 솔로몬의 당당한 선택은 이제야 차별에 맞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한국인의 힘을 보여준다. 나는 1/5은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시대는 변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 역사 속의 파친코를 기억해야 한다. 






선자는 고한수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고한수가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고한수는 그녀에게 노아를 주었다. 그녀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이삭과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삭이 없었다면 모자수와 손자 솔로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선자는 더 이상 고한수를 미워하기 싫었다. 성경 속 요셉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을 다시 만났을 때 뭐라고 했던가? 형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자가 이삭에게 이 세상의 죄악에 관해서 물었을 때 이삭이 가르쳐준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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