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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21. 2023

"구덩이"를 읽고

서울의 봄이 연상되다

작가 루이스 쌔커( Louis sachar)는 대학 시절 초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린 "웨이싸이드 학교"를 출간했다. 잠시 변호사 일을 하기도 했으나 전업작가가 되어 현재 미국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구덩이"책은 뉴베리상, 전미도서관상을 수상했다.


스탠리의 고조할아버지 엘리아는 마이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열다섯 살 엘리아에게 경쟁 상대가 생겼다. 그는 쉰일곱 살 먹은 이고르이며 마이라 아버지에게 살찐 돼지를 내놓으며 결혼 허락을 청했다. 가난한 엘리아는 마을 외곽에 사는 늙은 집씨 여인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작은 새끼 돼지를 매일 산꼭대기로 데려가서 개울물을 먹이라고 시켰다. 돼지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엘리아도 힘이 세졌다. 두 달 동안 변화는 있었다. 마이라의 아버지는 엘리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마이라에게 두 명 중 누구와 결혼을 하겠냐고 물었다. 자신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는 예쁘지만 멍청한 마이라를 보는 순간 엘리아는 크게 실망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공짜로 갈 수 있는 갑판원이 되어 떠난다. 단 집씨 여인을 산꼭대기에 데려다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스탠리 가족들은 집안의 모든 불행을 집씨 여인의 저주라 생각하게 된다. 

" 이게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냄새 풀풀 나는- 돼지도둑 고조할아버지 탓이다!"


스탠리의 증조할아버지 스탠리 옐내츠 1세는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역마차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에 '키스하는 케이트 바로우'를 만나 재산을 몽땅 털렸다. 사막에 혼자 남겨진 할아버지는 3주 만에 구조되었다. 할아버지는 신의 엄지손가락에서 피난처를 찾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고조할아버지 탓을 했다. 

" 이게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냄새 풀풀 나는- 돼지도둑 고조할아버지 탓이다!"


케이트 바로우는 백인 여성으로 마을의 학교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을 가르쳤다. 농사지은 양파를 파는 선생님은 흑인이며 메리 루 당나귀와 함께 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마다 의사 호손 선생님과 샘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늘 양파를 먹으라고 권했디. 손재주가 좋은 선생님은 학교의 지붕, 창문, 의자, 책상을 고치다가 케이트와 사랑에 빠진다.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본 마을 사람들은 흑인이 백인에게 키스를 했다며 그와 당나귀를 죽였다. 캐서린은 사흘 뒤 보안관을 총으로 쏘고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후 키스를 해주었다. 20년 동안 그녀는 무서운 무법자가 되었다. 20년 후 케이트는 초록호수로 돌아왔다. 


스탠리의 집은 가난하다. 스탠리는 뚱뚱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아버지는 악취가 나는 신발에서 냄새를 없애는 발명품을 만드는 중이다. 클라이드 리빙크턴라는 유명한 야구 선수는 노숙자를 위한 행사에 자신의 신발을 기증했다. 경매에 오를 그 신발은 5000달러 이상일 것이다. 그 신발이  하교 길에 스탠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스탠리는 아버지의 발명과 무슨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버지에게 주려고 달려갔다. 마침 경찰이 지나갔고 스탠리는 체포되었다. 아무도 스탠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스탠리는 감옥 대신 초록호수 캠프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매일 구덩이를 하나씩 파야 한다. 깊이가 1.5미터, 가로 세로 1.5미터가 되어야 완성이다. 못된 아이들이 매일 뙤약볕 아래서 구덩이를 파면 착한 아이들이 될 것이라는 취지이다. 식구들은 생각한다. 이 모든 불행은 고조할아버지 탓이다.

" 이게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지저분하고- 냄새 풀풀 나는- 돼지도둑 고조할아버지 탓이다!"






 첫 구덩이는 재미가 있었다. 스탠리 자신이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온몸이 쑤시고 손에 물집이 생기고 갈증에 허덕이는 작업은 갈수록 힘들다. 그래도 엑스레이, 오징어, 자석, 겨드랑이, 지그재그, 제로 친구가 생겼다. 그들이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데릭 던을 혼내주는 상상도 한다. 구덩이를 파다가 물고기 화석을 발견한 스탠리는 선생님보다 리더 엑스레이에게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다. 스탠리는 구덩이를 파다가 발견한 KB라고 새겨진 금속 쇠붙이를 엑스레이에게 준다. 덕분에 엑스레이는 하루 일을 쉬게 되었다. 소장은 더 집요하게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파고 뭔가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무언가 찾는 물건이 있는 것이다. 제로는 가장 빨리 구덩이를 판다. 그런데 제로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 제로가 스탠리의 구덩이 파는 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스탠리는 글자를 가르치기로 했다. 아이들은 두 사람을 질투하고 시비를 건다. 소동이 일어나자 선생님들은 제로가 글자를 배우면 안 된다고 한다. 제로는 선생님의 얼굴을 삽으로 후려치고 도망친다. 며칠이 지나자 사람들은 물도 없는 사막에서 제로는 죽었을 거라 예상한다. 스탠리는 너무 늦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선생님의 트럭을 훔쳐 도망치려다 구덩이에 빠진다. 캠프장을 떠난 스탠리는 신의 엄지손가락 산을 향해 계속 걸어간다. 제로는 살아있었다. 단지의 과즙을 먹고 배탈이 난 듯한 모양이었다. 물이 있는 곳을 향해 둘은 절벽을 오른다. 그리고 축축한 땅을 발견한다. 구덩이를 파서 물을 마시고 땅 속의 양파를 캐내 먹으며 건강을 되찾는다. 그리고 왜 소장이 아이들에게 구덩이를 파게 하는지 진실의 퍼즐을 맞춘다. 


구덩이는 어떤 의미일까? 구덩이에 빠진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좋은 의미는 아니다. 자기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사회에서 나쁜 아이라는 꼬리표를 가진 아이들이다. 마치 자신의 무덤을 파는 느낌이라는 표현도 있다. 재미로 구덩이를 파는 것은 아닐 것이다. 힘든 작업을 하는 이유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함이다. 구덩이를 파는 일은 명상인가 교육인가, 어떻게 구덩이 파는 일이 착한 아이가 되는 작업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득 영화 "서울의 봄"이 떠올랐다. 전두환의 혼자 힘으로 쿠데타를 일으킬 수 없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이라는 명분에 숨어 모두 악행에 협조한다. 더 빨리 승진을 하기 위해, 튼튼한 연줄을 만들기 위해 하나회를 만들고, 불 보듯 뻔한 결말이라며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쉽게 정의를 놓아버리는 군인들이 있고, 쉽게 사인을 하는 비겁한 대통령의 합작이었다. 구덩이를 파는 일은 착한 아이들을 만드는 일이라는 구호에 쉽게 사인을 한 공무원이 있을 것이고,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는 검사가 있었기에 아이들은 구덩이를 파게 되었다. 또한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시민들도 동의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가난한 아이들, 부모 없는 아이들은 소장의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희생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탠리는 구덩이를 팔수록 강해진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신의 임무인 한 구덩이를 파는 순간 구덩이 안에 침을 뱉는다. 그리고 휴식을 취한다. 스탠리는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는다. 역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덩치로 충분히 방어와 공격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리는 폭력을 쓰지 않고 참는다. 아이들의 잘못도 자신이 한 일이라며 지켜주기도 한다. 조건은 걸었으나 제로에게 글자도 가르친다. 늘 고조할아버지 탓으로 돌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마침내 신의 엄지손가락 산에 오르기도 한다. 시련, 실패에서 무언가를 얻은 셈이다. 펜댄스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묻는다. 왜 여기 있게 된 것 같냐고, 스탠리는 바로 고조할아버지를 떠올린다. 가족들의 저주, 불행은 모두 고조할아버지가 집시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여기 오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 때문이라고 네가 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든 것이라 소리친다. 아니, 스탠리가 무슨 잘못인가 말인가. 부모님이 가난해서 변호사를 쓸 수도 없었고 솔직히 진실만을 말했는데도 아무도 스탠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가난한 부모님을 만나는 것, 부모님이 자신을 버리는 운명을 아이가 어떻게 바꿀 수가 있는 것인가. 그런데 스탠리는 저주라고 생각한 고조할아버지의 근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로를 아무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스탠리는 그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희망을 가졌다. 엄지손가락 신이 마치 자신을 이끄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어서 일어난 일은 이제는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장소에 있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는 선조의 운명 같은 도움도 있었다. 책 속의 권선징악은 시시하다. 청소년 소설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는 모두 권선징악을 원한다. 전두환이 처벌받지 않는 세상, 하나회가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운명은 필히 권선징악일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느리지만 억울하지만 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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