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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23. 2023

이제야 읽은 "아버지의 해방일지"

'도둑맞은 가난'이 떠오르다

최근 30만 부가 팔린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간신히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읽었다. 늘 대기 3명이 있어서 예약조차 힘들어서 책을 받기까지 몇 달 걸린 것 같다. 유시민과 문재인이 추천한 책이라 많이 팔린 부분도 있지만 지식인이 추천한 부분은 많이 신뢰가 가기 때문에 책에 대한 기대가 무척 컸다. 책을 덮는 순간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과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가 떠올랐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해학이다. 딸의 말투는 (신기하게도 세 작품의 서술자는 모두 여자이다) 시크하게 상황을 그대로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이나 현실은 희극적이다. 정확히 말하면 비극인 상황을 희극적으로 표현했다. 이 점이 세 작품의 같은 점이다. 빨치산 빨갱이로 감옥에서 지내거나 평생 도망을 다니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구례에 사시는 농부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는 평범하지 않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눈을 흘긴다. 그럼 아버지는 말한다. "당신, 사회주의자 아닌감?" 평범한 그들의 대화에는 민중, 유물론, 사회주의가 주를 이루고 이데올로기가  삶을 지배한다. 단어가 이데올로기라 어렵게 느껴질 뿐 아버지와 어머니의 철학이자 신념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듯이. 그러나 나이 드신 평범한 농부들이 하는 대화가 보는 사람은 낯설기도 하면서 웃음이 난다. 역사의 현장에서는 진지하고 목숨이 달릴 정도로 무거운 주제가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지나 어르신들의 순박한 얼굴로 대면하니 그저 가벼울 뿐이다. 무엇이 그렇게 중요했나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무거운 주제를 작가도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이렇게 유쾌하고 가벼운 문체로 풀 수 있지 않았나 싶고 다시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가슴이 아리다. 용서는 자신이 하는 것이라고 제목처럼 아버지가 해방된 것이 아닌 빨갱이의 딸 작가가 해방된 것 같다. 나는 그 점이 가장 좋았다.


무겁지 않은 글을 요즘 독자들은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무겁지 않은 주제였으므로 독자들은 무거운 주제에도 관심은 있다. 어떻게 담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세 작품 모두 기억에 두고두고 남는다. 해학은 정말 고수의 기술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처럼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인지 마음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과는 다른 이 소설은 그저 유명인의 말로 베스트셀러가 된 것 같지는 않다. 입으로 입으로 추천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사상이란 저렇듯 느닷없이 타인을 포용하게 만드는 대단한 것일까. 나는 저 느닷없는 친밀감과 포용이 퍼스트 클래스에 탄 돈 많은 자들끼리의 유대감과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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