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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24. 2023

"서독 이모"를 읽고

기록의 의미란


가로 11 cm, 세로 19cm 판형의 작은 책이다. 하드커버는 보통 시집인 경우가 많은데 소설책의 하드커버는 낯설다. 현대문학 핀 시리지 책이다. PIN 021이라고 쓰여있다. 9 페이지 두 번째 문장에 '삼청동의 한옥을 개조한 세미나실에서 " 구절이 있다. 아, 이 부분이 책의 표지 이미지이구나 알 수 있다. 흑백의 데생으로 그린 한옥집이 표지를 가득 채운다. 그런데 제목은 서독이라니 어떤 관계일까 궁금해진다.


박민정 작가는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미스 플라이트' 소설을 썼다.


 '나'는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며 소설을 쓴다. 1년 후 대학원에 진학을 하고 이모가 쓴 박사학위 논문을 읽는다. 이모는 내가 다섯 살 때 1989년에 독일에서 브레히트의 희곡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다음 해에 대학교수가 되었다. 1990년은 독일이 통일한 해이다. 얼마 후 이모는 동독으로 입양된 한국계 독일인 클라우스와 결혼했다. 그는 2년 후 실종되었다. '나'는 소설 속에 클라우스와 이모를 등장시킨다. 그러나 마무리하지 못한다.

소설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해외 입양의 문제, 동독 좌파 지식인의 불만, 전시되고 대상화된 동독민의 삶, 대학의 기업화, 대학 교수의 권력 남용, 한국 통일의 문제 등이 있다. 드라마트루기는 희곡을 짓는 법, 연극론, 연출법의 독일어이다. 선우은실은 '나'가 이모와 클라우스의 삶을 드라마트루기라고 느낀 문장에서 이 소설 자체가 드라마트루기라고 평한다. 하나의 스토리에 대한 비평적 시선 및 연출을 위한 이론적 실천이다. '나'의 논문 쓰기와 소설 쓰기는 이에 속한다. "씀으로 완성되는 이론적 앎이 아닌 깨우침의 앎." 이 문장은 이 소설을 소개하는 한 문장이다. 이모와 클라우스의 인생은 타자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해석되었다. 비단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문제도 타인을 이해하려는 신뢰의 방식으로 풀 수 있다. 쓰기는 적극적인 실천적 행위이다. 혁명의 시기 1980~90년대와 2010년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독일과 한국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르지만 타인의 삶을 자기 가까이로 끌어오고자 하는 행위는 쓰기이다. 정치적이고 시사적인 문제를 쓰기 행위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연결지은 이야기이다. 끝끝내 완성하지 못한 작품 안의 '나'의 소설 쓰기를 작가는 작품 밖에서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실천을 한 셈이다.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가 떠오른다. 일제강점기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못하고 생계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부분, 지금도 막강한 권력에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대학교의 민낯을 보여준다. 물론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정서는 여전하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뉜 독일 또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있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문자가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기억에 의지를 했다. 그래서 보수적이고 전통적일 수밖에 없다. 쓰기와 인쇄는 기억의 부담을 해방시켰다. '나'가 쓰는 소설은 이모와 이모부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기억이라고 할 수 없다. 독자는 어떤 이야기가 진짜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아주 사적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상상으로라도 기록함으로써 무언가의 해방을 이루게 한다. 그 무엇이 무엇일까. 무엇을 '나'는 깨우친 것일까 생각해 본다.


쓰기라는 행위를 소설 구성 속에 두 인물의 삶을 교차적으로 묶음으로서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형상화했다. 놀라운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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