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달 Dec 25. 2023

그림책 "키오스크"

나의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올가는 키오스크( 신문, 잡지, 복권을 파는 아주 작은 가판대)에서 생계를 유지라는 일을 하고, 그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도 한다.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키오스크는 너무나 비좁고 올가는 너무나 뚱뚱해서 단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그녀는 키오스크를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여행 잡지를 읽기도 하고 석양이 멋진 사진을 오려 벽에 붙이며 마음을 달랜다. 어느 날 몰래 과자를 훔치려는 아이들을 잡다가 올가는 키오스크와 함께 넘어진다. 갑자기 그녀의 세상이 뒤집어졌다. 그러나 올가는 일어나는 순간 키오스크를 번쩍 들어 올려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동네 산책도 한다. 다리 위에서 올가를 만난 강아지는 반갑다며 그녀 주위를 뱅뱅 돈다. 줄이 얽혀 그녀는 다리 아래로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간다. 물론 키오스크와 함께. 그녀는 잡지에서 본 석양이 물든 바닷가에 도착한다. 올가는 이제는 키오스크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살게 되었다. 그리고 져녁에는 키오스크 안에서 멋진 노을을 바라본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우리는 키오스크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좁은 공간에 갇힌 기분이 어떤 것인지,  좁은 창을 통해서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심정,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의 답답함을 이제는 안다.


키오스크는 생계를 유지하게 만드는 직장, 삶의 이유를 안겨주는 가정과 같다. 안정하고 편하고 삶의 전부이다. 그러나 매일 만나는 똑같은 사람들, 일정한 삶의 패턴이 힘들 때가 온다. 그래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대리 만족할 무언가를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행운인지 불행인지 (사실은 불행적인 사고가 행운을 안겨주었음) 올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서 꿈을 이루게 된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이렇게 똑같아 보이는 패턴 속에서도 우연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막연한 생각으로 일을 시작하였고 어쩌다 학원을 차리게도 되었고 진짜 생각지도 못한 독립출판을 하게 되었다. 좁은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올가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본인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동네 산책이나 해볼까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강에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구는 말한다. 어휴, 답답해, 키오스크를 부수던지, 살을 빼던지 해서 나오지. 물론 그런 방법도 있다. 삶은 스스로 해내는 면도 있지만 운명처럼 기회가 오기도 하는 것 같다. 나 안에 갇히게 만든 키오스크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나이만큼 많지도 않다. 키오스크 같은 안정적인 삶을 선호했으니까. 나갈까 말까  많이 고민하지도 않았다.  


지금 나의 키오스크는 두려움이다. 지금 이대로도 좋잖아. 나간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미래의 불안감, 실패를 맛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올가처럼 답답한 나를 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석양을 바라보는 행복한 올가의 모습도 본다. 그래,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은 생각만큼 위험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도 바다에 몸을 맡겨 흘러가보기로 했다. 그곳에서도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독 이모"를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