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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26. 2023

그림책 "여우"를 읽고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 떠오르다

글에는 요즘이라는 시간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레 학습된 글도 있지만 나의 시간에는 최근 읽은 글, 이미지, 대화가 남아있다. 이 그림책을 읽은 순간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 떠올랐다. 이렇듯 책의 감상은 굉장히 사적이고 순간적이다. 시만큼 강렬한 그림책이다. 아니 기형도의 시를 읽고 작가는 이미지로 형상화했다고 느낄 정도로 비슷하다.


날개를 다친 까마귀는 한쪽 눈을 잃은 개와 같이 산다. 개는 까마귀를 등에 업고 달린다. 까마귀가 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주 친절하게. 여우는 둘의 달리는 모습을 본다. 개는 여우에게 두려움이 없다. 까마귀는 붉은여우가 무섭다. 그러나 셋이 사는 동굴은 어느덧 여우의 냄새가 가득이다. 여우는 자신의 등에 올라타라고 까마귀를 부추긴다. 훨씬 나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유혹한다. 결국 까마귀는 여우와 달린다. 여우는 아주 먼 곳까지 왔다. 그리고 둘도 외로움을 느끼라며 까마귀를 두고 떠난다.


여우의 불타는 눈, 붉은 이미지는 활활 타는 질투심 같다. 한때 삶의 동력이었던 질투심은 마치 산불과도 같다. 왜 여우는 질투심을 느낀 것일까. 여우, 까마귀, 개 모두 외로운 존재이다. 우리는 외롭다. 외로움은 우리의 숙명이다. 혼자 태어났고 혼자 죽는다. 외로워서 인스타를 하고 외로워서 결혼을 하고 나중에 더 외로울까 자식도 낳는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더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고도 쉽게 말한다. 아니, 모두 똑같이 외롭다. 그러나 개처럼 외로움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개는 맹자가 말한 성선설의 산물이 아니다. 개는 외로움을 아니까 남을 도와준다. 그래야 같이 있을 수 있고 나의 외로움을 덜 수 있다. 이기적이지 않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까마귀는 외로우나 자신의 외로움을 모른다. 그리고 불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라고 착각한다. 쉽게 자기 안에 갇힌다. 오로지 나는 것에 집중한다. 여우는 외로움을 질투심으로 잘못 받아들여 더욱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다. 가장 불쌍하다. 개와 까마귀를 헤어지게 한들 그들이 외로움을 느낀 들 자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나. 오히려 나쁜 놈이라는 소리만 듣는다. 평생 외로울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배우자가 있어도, 절친이 있어도, 나의 편이 백 명이 넘어도 외로운 것이다. 나는 오늘 외로움을 제대로 느꼈다. 나는 외롭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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