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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31. 2023

바냐 아저씨

우린 살아야 해요

퇴직 교수 세베브랴코프가 스물일곱 살의 젊은 아내 엘레나와 함께 시골 마을로 온다. 그곳은 전처의 딸 소냐와 전처의 장모 마리야와 전처의 오빠 바냐가 살고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세레브랴코프는 시골 마을과 이 집안의 자랑거리이다. 비천한 교회 일꾼의 아들로 태어나 신학생이 되어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었고 지금은 원로원 의원의 사위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정서와 맞닿는다. 장남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면 집안의 자랑이자 마을의 명예까지 높여준다. 그러나 실제로 그와 살아보니 속물적이고 위선과 게으름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의사 아스트로프를 부른다. 그러나 그의 진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자신의 아픔을 식구들에게 짜증으로 푼다. 그의 아내 엘레나도 지쳐간다. 그리고 아스트로프와 바냐는 아름다운 엘레나에게 반한다. 바냐는 젊은 시절 엘레나를 짝사랑했었고 고백도 하지 못한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한다. 퇴직을 하고 육체적인 노화, 사회에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패배감으로  화가 난 세베브랴코프는 영지를 팔고 핀란드로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이 땅은 세베브랴코프의 전처, 즉 바냐 누이동생이 지참금으로 산 땅이다. 바냐와 소냐는 지금껏 열심히 손으로 이 땅을 일구고 검소하게 살며 수익을 세베브라코프에게 보냈었다.  바랴는 배신감으로 화가 나 총을 두 발 쏜다. 다행히 빗나가서 세레브랴코프는 죽지 않았지만 서둘러 집을 떠난다.


<세 자매>보다는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아침 드라마에 나올 법한 줄거리는 공감을 사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집안의 장남은 처음에는 그러지 않지만 참 이상하게도 자신이 잘나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변한다. 사람을 무시하고 가족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재산을 몽땅 자기가 가지려고 하고 고향을 떠나고 싶어 한다. 잘난 장남 아래에 동생들은 우리들의 삼촌들이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모자란 듯 하지만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잘난 장남이 쓴 논문, 책을 읽고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뿌듯해한다. 가꺼이 존경한다. 그러나 바냐 아저씨는 변한 속물 덩어리 장남에게 용감하게 총을 쏜다. 일부러 빗나가게 쏜 것인지, 겁이 나서 오발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땅은 지켰다. 조카 소냐와 함께. 그들은 또 오늘도 검소하게 성실하게 하루를 살 것이다.


"삼촌, 우린 살아야 해요. 길고도 긴 낮과 밤을 끝까지 살아가요.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 주는 시련을 꾹 참아 나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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