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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Dec 29. 2023

"나목"을 읽고

박완서와 박수근

<나목> 소설 속에 화가 옥희도의 실제 모델은 박수근이다. 6.25 전쟁으로 서울대학교 입학 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미군 PX에서 근무를 하던 박완서는 이때 박수근을 만난다. 미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그를 다른 환쟁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그가 타계한 후 그의 유작전을 보고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녀의 첫 작품 <나목>이 나오게 되었다.


"나"는 엄마와 둘이 큰 고택에서 살고 있다. 미군 PX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리라며 호객하는 일을 한다. 가끔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들에게 갑질도 하고 가끔은 그들을 위해 영업을 열심히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집에 들어가면 엄마는 무섭고 탁탁한 회색 분위기를 내며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엄마는 전쟁으로 아들 둘을 잃었다. 그리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은 잃고 딸만 남았다는 푸념을 한다. 엄마는 살 의지가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청춘의 들끊는 피로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그리고 다른 환쟁이와 다른 옥희도 씨에게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아이와 아내가 있는 옥희도 씨는 전쟁의 가난에서 허덕이며 생기가 도는 "나"에게 잠깐의 쉼을 느낀다. 우리는 살아 있어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무심한 엄마는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옥희도 씨도 그의 고독은 그의 것이었다. "나"는 전쟁으로부터 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용감해지기로 한다. 의연하게 봄의 믿음을 놓지 않는 저 나목처럼.


박완서의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나목>도 20대의 박완서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팬데믹 시대를 겪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못했을 절망감과 불안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마음이 애달프기보다는 엄마의 넋두리에 상처를 받은 딸의 마음과 더불어 엄마를 미워하게 되는 복잡한 내면, 사랑을 갈구하는 허전한 외로움에 마음이 더 아팠다. 죽음을 당한 사람도 안타깝지만 남은 자들의 마음에 집중이 된다. 육체적인 죽음을 같이 겪지 않을 뿐 살아남은 자도 죽음을 똑같이 경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남은 자들의 마음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다시 봄이 오기를 바라는 인간적이고 솔직한 젊은 마음이 이기적일 수는 없다. 전쟁으로, 전염병으로 폐허가 된 그곳에서 우리는 늘 희망을 찾으려 노력한다. 젊은 박완서의 마음이 애잔하고 다시 그녀를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고 위로를 받았다는 고마움도 느꼈다. 그녀가 40살이 되어 젊은 20살의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묻어둔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을 거라 생각해 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


고독이란 검은 거인 앞에서 측은하도록 심한 낯가림을 하며

고독을 알사탕을 꺼내 핥듯이 기호품의 일종처럼 음미하기도

저들도 춥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할지도 모른다

늘 이런 모순에 자신을 찢기 우고 시달려 균형을 잃고 피곤했다

그가 깊이 숨긴 절망을 엿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짓에는 풍부한 사연이 있었다

삶을 멈추고 정지된 시간 속에 고즈넉이 용해되어

남의 시선에 예민한 족속

빛과 빛깔의 빈곤

피부적인 이끌림

나는 완전히 타의로 또 하나의 내가 되고 있었다

그런 아픔을 나눌 엄살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온전한 나만의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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