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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Feb 27. 2024

"겨울 간식 테마 소설집"을 읽고

겨울을 잘 지키는 레시피

앤솔러지 소설집이다. 겨울 간식을 소재로 다양한 소설들이 있다. 뱅쇼가 나오는 "한두 벌의 다른 옷"은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아이랑 참 잘 맞아, 하는 친구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또 잘 맞는다고 생각한 친구와는 절교까지 할 수 있다. 반면 그럭저럭 맞는 친구와는 그럭저럭 오래 우정을 유지하기도 한다. "꼭짓점이 여덟 개, 혹은 여섯 개인 사람이 만나 마음을 뜨겁게 끓이고 휘젓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게 휘발되듯이" 문장처럼 우정을 겨울에 마시는 뜨거운 뱅쇼로 비유하였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책을 읽고 관심 두던 작가 박연준 소설이다.


추운 겨울 밖에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빈둥 책 보고 영화 보면서 먹기 좋은 귤이 소재인 "귤락 혹은 귤실" 이야기는 정말 딱 귤의 특성을 드러낸다. 누가 깎아주지 않고 홀로 까먹는 귤은 지루한 과일이다. 번아웃이 되거나 사회에서 소외된 겨울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셋은 누가 귤락(귤실) 하나 없이 귤을 빨리 까나 내기를 한다. "나는 결코를 좋아한다. 그 반대인 언제나도 좋다. 결코와 언제나 사이에서 이들을 매우 간접적이면서도 내밀하게 이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문장처럼 "그런데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사람이 이어준다. 그렇게 셋은 카페에서 알게 된다. 귤을 까는 시기는 그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는 문턱의 시간이다. 그들에게도 봄은 올 것이다. 


다코야키를 소재로 한 "겨울기도"는 방황하는 청춘 이야기이다. 학교에 장기 결석을 하는 아이를 찾아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는 또 바다에 나가 문어를 잡아 왔다. 아이는 창피하게 고시텔까지 찾으러 왔다며 역정을 낸다. 그래도 그 문어로 다코야키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청춘은 이렇다. "스물 하나잖아, 술 먹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실수하고 싸우고 절교하고 화해하고 다시 절친이 되는 변덕의 날들, 흥분하고 좌절하고 자기애로 충만했다가 곧바로 자괴감으로 무너지는 몸과 마음" 


만두 이야기가 나오는 "모닝 루틴"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 셋이 재미있게 명절을 나는 소설이다. 결혼 언제 하니 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 좋고,  종일 기름과 씨름하며 전을 부치지 않아서 좋지만 그래도 명절 음식이 그립다. 할머니가 만들어준 만두를 먹지 않아서인지 더이상 나이에 맞는 삶을 살기 어렵다. 침이 꼴딱 넘어가는 글이다.


"포토메일"은 엄마의 죽음으로 할머니와 함께 사는 경희와 재하의 이야기이다. 재하는 할머니가 미워 제주도로 도망을 치지만 경희는 할머니를 지킨다. 호떡에 팥이 들어있는 줄 알고 먹지 않았던 그때처럼 무언가를 오인하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종국에 무언가를 깨닫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뜨거운 호떡을 호호 불며 맛있게 먹는다.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자가 행복한 시절을 생각하며 조카와 유자차를 담그고 마시는 내용이다. 달고 따뜻한 것을 산 사람만 먹어서 미안한 감정이 든다. 


2월이다. 아직 겨울의 냄새는 남아있다. 언제 봄이 오나 기다리던 마음이 갑자기 이 책으로 겨울을 조금 붙들어본다. 겨울을 잘 지내는 레시피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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