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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ul 24. 2024

<여름과 루비>를 읽고

약자들의 이야기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신랄하다. 자신이 겪은 일이라면 더욱더 솔직하다. 그래서 작가는 어린아이 "여름"을 선택한 것 같다. 어린이의 목소리는 그만큼의 신랄함을 불편함 없이 읽을 수 있게 만든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 같기도 하지만 동화의 탈을 쓴 약자의 슬픈 이야기이다. 어린이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린이는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를 자세히 오랫동안 기억한다. 고모여도 어쩔 수 없고, 새엄마는 더욱 어쩔 수 없는 강자의 위치에서 가한 폭력에 아이는 상처를 입는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상처가 존재했으므로 기억하는 것이다.


박연준은 시인이다. 작가의 책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를 읽고 첫눈에 반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시인...시인은 작가와는 다른 결이 분명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시인이 쓴 소설의 매력이 넘치고 넘친다. 소설 합평을 할 때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들은, 시적인 표현이 많고 그리고 아름답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엄마 없이 고모 손에 자란 여름이는 엄격한 예절을 배운다. 왜 가위를 줄 때는 반대로 주어야 하는지 고모의 침묵을 통해 배운다. 아빠가 새엄마와 살게 되면서 다시 새엄마 손에 자라게 된다. 내 자식이었으면 너는 벌써 죽었어라는 말을 들으며 공허와 슬픔을 알게 된다.


고모와 새엄마는 악인이라 그랬을까.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 자식을 위한 돈만 내놓는 남편에게 그래도 아침밥을 안 차려준 적이 없다며 평생 자랑으로 삼는 고모와 여름이 아빠를 쫓아다니는 수많은 여자들, 자식에게 버림받아 자살한 고모할머니, 가구 같은 할머니, 야반도주한 루비의 엄마는 악인인가, 아니면 식민지, 더 오래전 인류의 노예근성인가. 결국 또 여자들이 약자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결국 자신에게 하게 된다. 언어가 모두 담을 수 없기에 이야기 화자는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언어는 얼마나 약하고 비인간적인가. 그래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상처를 재배열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나는 모두를 알 수 없기에 여름이와 루비의 마음을 아프게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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