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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ul 25. 2024

<모순>을 읽고

감정의 모순

 스물다섯 살이 된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자각을 하며 눈물을 흘린다. 쌍둥이 엄마와 이모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엄마는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빠 때문에 시장에서 속옷을 파는 고달픈 가장이 된 삶을 살고 있고, 이모는 정확한 계획대로 성실한 삶을 꾸리는 이모부 덕분에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동생 진모는 조직 폭력배 비슷한 모습으로 살인 미수 죄목으로 감옥에 가 있고, 사촌 주리와 주혁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안진진은 중학생 때 운동화를 사기 위해 가출을 해 두 달 동안 공장에서 일을 했고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에 의해 가출을 해 가출 소녀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대학 등록금을 혼자 마련하면서 휴학을 밥 먹듯이 한 상태에 이모부의 소개로 지금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엄마 때문이라는 졸렬한 결론을 내리던 안진진은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안진진에게는 두 남자가 있다. 정확한 계획대로 움직이는 둥근 얼굴에 둥근 눈을 가진 나영규와 계획을 세우지 않고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풀꽃에 관심을 두고 사진을 찍는 형편이 자신과 비슷한 김장우가 있다. 안진진은 사랑이 무엇인지 두 사람을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김장우와 가을 여행을 떠났다. 안진진은 앞치마 두른 간수에 휘둘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며 가출을 한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든다. 감장우를 사랑한다고 확신을 한 순간 마음이 우울감이 들며 술을 마신다. 그리고 김장우가 가장 사랑하는 형의 여행사 부도로 형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 앞에서 동생이 감옥에 가게 되었다는 말도, 오 년 전에 떠난 아버지가 중풍과 치매에 걸려 돌아왔다는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숨 막히는 인생의 계획표를 가진 나영규에게는 모든 사실을 말하고 위로도 받는다. 안진진은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전화를 기다리는 것, 유행가의 가사에 매료당하는 것, 거울을 자주 보는 것,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안진진은 김장우에게는 착한 모습, 가난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나영규에게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안진진은 누구와 결혼을 하게 될까.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불행이다. 엄마는 가난과 싸워야 하모고 감옥에 간 아들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고 치매에 걸린 남편을 위해 다시 애를 써야 하느라 바쁘다. 지친 엄마는 아침이면 건전지를 갈아 끼운 기계처럼 힘이 넘친다. 소설과 시를 읽는 이모는 단조롭고 외로운 삶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죽음을 선택했다.


  나는 이 소설에서 말하는 모순이라는 것이 부자이지만 불행하고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표면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진진의 가족들은 살아있는 솔직함이 있다. 안진진의 아버지는 갇혀있는 삶을 두려워했다. 가장이 된다는 것, 나를 위해 돈을 벌어오는 책임을 지라는 말, 무섭고도 두려운 말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멋진 가장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자랑하기 위해 두려움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철저히 연기한다. 그러나 안진진의 아버지는 몸이 반응하는 그대로 할 수 없다며 집을 나가서 가장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솔직함이다. 술로 자신을 학대하며 그러나 갇힐 수 없음의 사이에서 방황한다. 안진진의 동생 진모는 사랑하는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그 여자가 만나는 남자를 때리고 살인미수라는 죄로 감옥에 갇히며 그녀는 자신을 떠날 수 없음을 확신한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원초적인 질투심이 이는 마음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 진모는 그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을 위해 감옥에 갈 수 있을까. 낯선 사랑의 속살 같지 아니한가. 안진진의 엄마는 남편과 아들을 위해 책을 읽는다. 노골적인 생명력으로 그들을 보호한다. 도망가지 않는 것도 엄마가 선택한 솔직함이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안진진은 이십 대라는 젊음이 무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안진진은 인정하고 결혼 상대를 찾아본다. 그리고 누가 더 사랑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 이모부와 닮은 계회적인 남자를 선택한 것이 모순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면에서 모순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녀는 감정에 솔직했을 뿐이다. 나영규는 이모부와는 다르다. 이모부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모는 살아있지 못함을 느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랑은 변한다. 당연하다. 변하지 않았다고 마치 박제된 사랑의 기념품을 보여주듯이 거짓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나의 인생 계획은 이렇다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은 살아있는 것이다. 처음에 안진진도 나영규의 솔직한 계획표 발표에 놀라며 갇힌 느낌을 받았다. 나는 솔직함이 주는 모순은 현실에서는 살아가기 힘든 것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적당히 거짓말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솔직한 사람은 사회에 어울릴 수 없다. 감정에 솔직하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더욱 감정을 숨기라고 강요하는 이 세상의 모순, 내 안에 감정의 솔직함과 그것을 누르는 힘, 그것을 나는 이 소설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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