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치카>를 읽고

새로운 여성상

by 하루달

소네치카" 소설로 울리츠카야 이름을 알리게 된다. 현재 러시아 여성 작가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네치카는 일곱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까지 쉼 없이 책을 읽는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해 가벼운 정신병리적 기운이 있었다. 도서보관실에서 근무하던 중 상사의 권유로 대학교 러시아문학부에 입학하기로 결심했는데 전쟁이 났다. 스베르들롭스크로 피난을 갔고 그곳 도서관 지하실에서 마흔일곱 살의 화가 로베르트 빅토르비치를 만나 이 주만에 결혼을 한다. 그는 선조, 부모, 스승, 학문, 친구 등 자신의 자유에 족쇄를 느끼는 존재들에게 배반을 할 정도로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전쟁으로 둘은 가난한 생활을 한다. 그래도 둘은 행복하다. 아기 타냐와 함께. 소네치카는 매일의 행복을 소중히 기억한다.


"모유는 충분했고 잘 나왔다. 아이가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잇몸으로 젖꼭지를 조금씩 밀고 당기고 살짝 깨물 때면 젖을 먹이는 소냐에게도 기쁨을 가져다주었는데 이 감정은 아침이 밝기 전 이른 시간에 잠을 깬 남편 역시 왠지 모르게 어김없이 느끼는 듯 해다. 남편이 그녀의 널찍한 등을 껴안으면 아이는 질투라도 하듯 소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그녀는 이 견딜 수 없는 두 사람의 무게가 주는 행복에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소네치카는 아침의 첫 햇살에 미소를 지었고 그녀의 몸은 소중하고 자신에게서 떼어놓을 수 없는 두 존재의 허기를 조용히 그리고 즐거이 채워주었다."


로베르트는 타냐를 위해 만든 장난감을 만든다. 다른 화가가 눈여겨보고 무대 장치 일을 맡긴다. 디나모 지하철 역 근처에 집을 사고 로베르트 주위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인다. 소네치카는 지적 풍요로움에 만족감을 느낀다. 딸 타냐는 같은 반 동급생 야샤를 좋아한다. 파시스트 공격으로 망명을 간 부모는 죽고 야샤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수공업학교에서 탈출한 야샤는 학교 청소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야샤를 불쌍히 여긴 소네치카는 집에서 살게 하는 자비를 베푼다. 로베르트에게 예기치 않은 두 번째 운명이 일어난다. 야샤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한결같이 하얀 정물화만 그린다.


"야샤가 달디단 설탕차를 천천히 마시는 동안 그는 그 모습을 오래오래 쳐다보며 항상 그녀의 새하얀 모습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소녀의 새하얀 모습은 텅 빈 벽의 거뭇한 하얀색을 배경으로 무지개보다 더욱 밝게 빛났다. 분홍빛을 띠면서도 새하얀 야샤의 팔에 놓인 부엌 찻잔의 애나멜 광택, 수정 같은 절단면을 가진 커다란 각설탕 조각, 창문 너머의 희끄무레한 하늘, 이 모든 것들은 반음계였는데 하얀색, 따뜻함, 살아 있는 것의 기적이라고 할 그녀의 계란같이 하얀 작은 얼굴로 지혜롭게 향하고 있었다. 이 얼굴이 주된 음이었고 여기로부터 모든 것이 생성되고 자라고 연주하고 죽어 있는 하얀색과 살아 있는 하얀색에 대한 비밀을 노래하고 있었다."


둘의 관계를 알게 된 소네치카는 어떤 행동을 할까.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책이다.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치밀한 묘사와 객관적인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게으르다."라는 문장을 쓰지 않고 게으른 상황을 묘사해야 좋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묘사의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는 그 상황에 푹 빠져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된다. 또한 주인공들의 감정에 쉽게 동요되지 않는다. 분명 감정을 드러내지만 객관적이고 차분하고 냉철하다. 그래서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객관적인 묘사가 아름답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전체적으로 러시아 고전 책 이야기가 배경이 되는 듯하다. 현재 러시아 문인들은 이 부분이 핸디캡이라 들었다. 위대한 고전 작가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 고전을 바탕으로 그들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문학은 사랑이다. 포용하고 인내하며 자비를 베푸는 사랑은 우리의 정서와도 잘 통한다. 그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여성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