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포옹>을 읽고

쓰기는 언니이다

by 하루달

박연준 산문 책이다. 에세이는 사적인 부분을 드러낸다. 남편 장석주가 지독한 책 사랑에 빠진 이야기, 고양이 발톱을 깎은 일화,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를 한 부분까지 개인적인 부분이 드러난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삽입되는 일화를 통해 작가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 수필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요즘은 어렵고 복잡한 소설보다 에세이를 많이 읽는다고 한다. 에세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문학이다. 그런데 박연준의 산문은 다르다. 시인이 쓴 에세이는 우선 통찰력이 아름답다. 놀라운 시를 읽을 때 느끼는 감탄이 자주 나온다. 재미있는데 깊이가 있다. 날카로운데 아프지는 않다. 차갑고 외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따뜻함이 넘친다. 문학, 사람, 생명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있다. 특히 마지막 챕터, 시를 느끼고 어루만지는 부분은 새로운 문학 평론의 장르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시를 말할 수 있다면, 이런 평론이라면 시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하는 글이 참 많았다. 첫 책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 그때의 열정을 '짐승의 계절'로 표현한다. 또 작가는 쓰기가 자신에게는 보험이라 했다. 나이가 들어도 위로받고 치료가 되는 쓰기는 든든한 보험이라고. 공감한다. 이미 작가가 보험이라는 단어를 썼으니 나는 언니라고 표현하고 싶다. 나는 언니, 여동생 친자매가 없다. 언니는 나에게 로망이다. 언니랑 싸움을 밥먹듯이 한다는 것도 들어서 안다. 너무 닮아서, 가까워서 싸우지만 결국 모든 것을 품는 것은 언니다. 품는 존재는 엄마도 있지만 엄마의 품은 인간 세계의 사랑이 아니고 너무 이상적이고 희생적이라 포함을 시키지 않는다. 내 글쓰기는 그렇다. 딱 언니 같은 것이다. 내 고민을 들어주고 치료를 해주는 내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언니이다. 그래서 좋다.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 남편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 자식에게 하지 못하는 모든 말을 언니에게 할 수 있다. 혼내기도 하지만 묵묵히 들어주는 나를 잘 아는 언니는 글쓰기이다. 나의 언니가 생겨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