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오해는 어디서 시작하는가
은지와 서윤은 비슷한 감수성, 문학적 취향, 가정형편과 같은 문법을 사용하는 말이 잘 통하는 단짝 친구이다. 이십 대는 누구나 본인이 또래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고 늙지 않을 줄 착각하고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는 나이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둘은 시시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은지는 진짜 어른이 되기 전 마지막 사치를 부리자며 제주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 서윤의 거절로 바로 무산되었다. 서윤은 6년째 사귀어온 경민이와 헤어지고 목숨처럼 지켜온 정기 예금을 깨고 동남아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
삼총사였던 다빈이는 미국 대학에서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룸메이트의 고국 베트남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여행 일정은 태국에서 시작이다. 은지의 큰 캐리어 안에는 스피커가 있다. 은지에게 음악은 필수 생필품인 것이다. 서윤은 간단하게 배낭을 하나 메고 다녔다. 은지는 간단한 영어 회화로 여행을 리드했다. 이것은 불화의 작은 씨앗이 된다.
잘 지내다가 싸움의 시작은 늘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 악의 없이 던진 말이 상처가 되고 둘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었다. 캄보디아 마지막 날에 은지는 호텔 니약 따로 옮기자고 한다. 죽은 사람 중 자기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본다는 미신을 믿으며. 서윤은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를 꿈속에서 만난다. 생전에 자신을 키운 할머니가 죽어서도 폐지를 줍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깬 서윤은 큰 소리로 울었다.
베트남 국경 지대에서 다리를 저는 가난한 아이가 은지의 캐리어를 등에 지고 걸었다. 서윤은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낸다. 은지는 억울함과 수치심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울었다. 둘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빈이만 기다리고 있었다. 룸메이트와 싸워 못 온다는 다빈이의 대답을 듣고 둘은 이 여행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좋을지 몰라 맥없이 먼 곳만 바라봤다.
여행을 떠나면 처음에는 좋다가 꼭 싸우게 되어 있다. 절친이 원수가 되어 돌아온다는 해외여행의 불문율. 아주 사소한 오해는 둘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 착각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싶다. 비슷한 취향과 비슷한 가정환경은 사실 전혀 달랐다. 같은 나이대이기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지만 그 공감대는 조금씩 다른 위치에서 자신만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모두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절친이지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할머니의 가난을 말하지 않았던 서윤이는 은지의 행동에 자신만의 오해를 스스로 만든다. 은지도 영어로 소통하면서 서윤에 대한 자신만의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우리가 여행에서 왜 싸웠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타인이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밋밋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호텔 니약 따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는 전설은 소설적 요소가 되었다. 은지가 그 전설을 듣고 호텔에 가자고 했는데 서윤은 보고 싶은 할머니를 만났다. 은지가 준 선물일 수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행운보다는 사소한 감정에 더 마음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