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째, 문을 막는 아이들

by 홍지현

수업이 끝났다. 우림이가 오늘따라 행동이 꿈 뜨다. 그럴 아이가 아닌데 시간을 자꾸 보며 글을 늦게 쓴다. 나는 글을 먼저 쓰고 첨삭까지 받은 학생에게는 가도 좋다고 말을 하는 편이다. 아이들은 또 다른 학원으로 가야 한다. 뭐라도 사 먹고 공부를 했으면 하는 마음에 일찍 가도 좋다고 한다. 그리고 10분 일찍 가는 조건에 아이들이 집중을 한다. 그런데 우림이가 아이들에게 가지 말라고 눈치를 준다. 우림이 글 첨삭도 끝났다. 아, 이제 진짜 끝났네 나는 말했다. 우림이가 지은이가 밖에 와 있다고 한다. 지은이가 왔다고? 나는 놀라 문을 열었다. 1년 전 그만둔 지은이가 서 있다. 지은이도 저학년부터 꽤 오래 수업을 했는데 시간이 안 맞아 작년에 그만두었고 지금 공부하는 아이들을 소개한 친구이다. 신기하게도 아침에 학원 물품을 정리하면서 지은이가 태국 여행을 가서 사다 준 부채를 집어 들며 잠깐 지은이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녁에 이렇게 보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은퇴한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 주다니 무척 놀랐다. 키가 훌쩍 커서 제법 중학생티가 많이 났다. 언제나 바르고 성실한 아이, 흠잡을 곳이 하나도 없는 착한 아이이다. 우림이가 문을 막는다. 오늘 아무도 못 간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앉지도 않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이러다 가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다음 학원이 있잖아, 학부모들에게 전화가 오는데, 하면서 아이들을 보내려 했지만 아이들은 서운한지 가지 않는다.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며, 엄마 전화도 안 받으면서 문을 막는다. 왜 그만두는지 나에게 묻는다. 나도 그동안 눈물을 많이 참았다. 아이들에게 한 달이라는 이별 기간을 주었지만 한 주 한 주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샘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하면서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안아주기만 했다. 잠깐 떡볶이와 선물에 금방 헤헤하고 웃는 모습도 귀여웠다. 중학생들은 컸다고 어른처럼 군다. 나는 아이들과 수다를 떨다가 별 얘기를 다했다. 봄에 산티아고를 간다, 글을 더 쓸 것이다, 난민 봉사 이야기, 아들 딸의 꿈 등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극히 사제 사이였던 아이들이었다. 나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순수한 인정을 보면서 나의 마음이 느슨해졌나 보다. 아이들도 장래 희망, 꿈, 이성친구들, 바쁘게 사는 이야기를 한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평등해진 느낌이다. 내가 내려놓으니 아이들도 편한가 보다. 용돈으로 사 준 선물들도 감동이다. 물론 학부모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고맙다. 나는 내 아이들의 학원 선생님까지 챙긴 적이 없다. 그런데 딸은 늘 학원선생님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요즘 트렌드인가 보다. 학교선생님들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고 당연히 공교육의 위계질서는 있다. 그런데 학교 선생님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교육보다는 돌봄의 임무가 많다고 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나기 전 막아야 하고, 학폭이 일어나면 걷잡을 수 없이 힘든 것 같다. 예전 나의 부모님은 감히 학교 선생님에게 따지지 못했다. 다 아이가 잘못한 듯 말했다. 이런 행동이 무조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시절 존중이라는 감정, 넘을 수 없는 선은 있었던 것 같다. 학원에서 다 배우고 학교는 평가하는 시스템이 된 것도 문제이다. 학교선생님들도 이런 상황에 아이들에게 내신 점수로 위협을 준다. 아이들은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샘들의 말을 듣는 척해야 한다. 이런 하소연을 학원선생님들에게 말한다. 이러면 모두 손해이다. 학교에서 모두 배울 수 있다면 사교육비가 들지 않을 것이고 학교 선생님들의 역할도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고 아이들도 이중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사제의 정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나는 "끊는다"는 말이 싫었다. 김연수 작가의 친척 중 가게를 하는 분이 계시는데 일 년 365일 일을 했다고 한다. 쉬면 자영업자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그냥 가게에 있는 것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본자세이다. 자영업은 고정 수입이 불규칙하다. 학원도 마찬가지이다. 만족하고 잘 다니던 아이들도 갑자기 그만둔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아이가 들어오기도 한다. 불규칙 같지 않은 불규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은 늘 불안하다.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고 산다. 나는 계산에 약한 편이라 회원 수에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누구 끊었어요? 하고 말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5명이 공부하다가 1명이 빠지면 빈자리가 무척 크다.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이 그렇다. 누구는 무슨 사정이 있다고 말하는 나 자신도 유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원을 끊는 것은 쉽다. 교육이 아니고 장사이기 때문이다. 이리 저기 선택하는 소비자이다. 사실 지은이가 학원을 그만둔 경우도 뜻밖이었다. 아이가 수업을 좋아한다고 늘 말하던 학부모였기 때문에 갑작스레 지은이가 수업을 못 한다는 말에 놀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은퇴 소식에 오다니 나와 지은이가 나눈 정은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친절은 자본주의 친절이 아니라 자부했었다. 학부모는 몰라도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했다. 그 점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나의 적성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그만두는 경우도 생기는 일에 나는 불필요하게 신경을 쓴 것 같다. 이제 생각하니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나와 정을 나눈 아이들을 나는 따뜻하게 기억할 것이다. 특히 내가 별명을 붙여준 덕선이, 장기하, 주디, 예술인들의 미래도 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