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을 읽고

by 하루달

오스틴

담배

넝쿨식물

라임

첼로

라인백

고추

숨을 쉬어

실루엣

알라모의 영웅들

포솔레

히메나

빈집

사라진 것들



총 15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졌다. 모두 1인칭 주인공 시점이고 '나'는 40대 남성들이다. 김애란의 미국 남성용 버전이라고 느낄 정도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매우 현실 같은 사실성이 돋보이는 점, 담백하고 어렵지 않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다는 점, 가끔 나오는 아름다운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는 점 등이다.


40대 남성 주인공들은 대부분 아내가 있다. 자식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들의 공통적 취미는 음악 듣기,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술 마시기, 담배 피우기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아주 가끔 나만이 누리는 사치 활동이다. 거의 대부분 예술인 직업을 가졌다. 음악과 와인의 소개가 무척 자세하다. 유튜브에는 '사라진 것들' 음악 플레이리스트도 있을 정도이다. 그들은 이십 대 대학교 친구들과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친구들과의 삶과는 무척 다르다. 아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다는 통계가 있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내가 해 줄 말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어쩐지 더 큰 목적에서 이탈해 표류하는 기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이 늘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끊었던 담배를 모두가 잠든 밤 피우게 된다. 그때 어떤 기분일까. 주인공은 이유 없이 운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른다.


꿈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이십 대에 찾지 못한 채 사십 대가 되었다. 그저 꿈을 이루는 아내 마야의 곁에 있는 것, 친구들 리베카와 데이비드 곁에 있는 것이 더 큰 기쁨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버리고 '나'는 평범해진다. 그것은 '우리의 몸이 엄청나게 허약하며, 갑작스럽고 불가해한 방식으로 우리를 배반할 수도 있는 느낌'이다. 아니면 '너무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두려워서 물러나 있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청춘을 바라보며 놀란다. 내가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 버린 것인지.


부모의 역할도 힘들다. 부모는 얼마나 나약한지, 결함 투성이인지 아이에게 고백을 하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려 아이를 돌보지 않기도 한다. 잘 나가는 친구를 질투해서 친구 집에서 사소한 골동품을 훔치기도 한다. 이런 행동을 사십 대에도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 수도 있다. 여전히 나약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아갈 뿐이기 때문이다. 포슬레 수프를 잘 만드는 식당에 가는 시간, 세상 밖 혼란의 시간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나 식당의 주인도 바뀐다. 더 이상 포슬레를 먹을 곳이 없어진다. 직장에서는 나의 일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까 봐 두렵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유령이 되기도 한다. 칼리와 나는 그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젊은 히메나와 각각 우정을 맺는다. 그것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생각에 너무 매달려 애쓰고 있어서, 과거를 놓아버리기가 너무 힘들어서'이지 않을까.


김애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청춘과 지금의 시간을 비교하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을 읽고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것, 나에게서 사라진 것을 생각해 보는 잔잔한 시간이었다. 남성 시점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성역할의 구분, 차별적인 요소는 거의 없었다. 다만 잔잔하지만 슬펐고 공감하지만 안타까웠다. 왜 우리는 결혼과 출산으로 다른 인생이 되며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일까. 왜 청춘은 모습을 바꾸는가. 누가 강요한 적도 없는데 왜 나를 잊어버렸던 것일까. 가족이라는 공동체, 사회라는 공동체가 김승우가 말한 고유한 한 사람의 모임이 될 수 없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것을 찾는 시간일까. 나의 옛 동네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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