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made you come here?
(헬스장 6km, 우리 집에서 정약용 도서관까지 걷기 7km, 총 13km)
어느 의사가 온몸이 이유 없이 아프다는 나에게 말했다. 요즘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나는 수영을 일주일에 2,3번 한다고, 그래도 조금 최선을 다한다는 듯 말했다. 의사가 자기도 수영을 해서 아는데 운동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단정 짓는다. 우르르 회원들과 함께 한 두 바퀴 돌고 좀 쉬었다고 한 두 바퀴 도는 50분 수영은 준비 운동 5분 빼고 잠깐 쉬는 5~10분 빼면 실제로 운동은 30분도 채 안 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조금 찔리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벅차다고 하소연을 했다. 의사는 나에게 수영 대회를 나가라고 한다. 자기도 일반인으로 대회를 나가는데 접수 시작과 동시에 금방 마감이 된다며 엄청한 인기를 자랑한다. 눈을 동그랗게 뜬 나에게 왜 대회를 나가야 하냐면 그래야 운동을 제대로 하기 때문이란다. 막연하게 건강해지고 싶다는 마음 말고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대회에 나갈 실력이 아니라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달리기를 하라고 한다. 나는 순간 의사가 아닌 운동 트레이너와 이야기하는 줄 착각했다. 달리기는 전신 운동이 되는 아주 좋은 운동이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땀을 흠뻑 흘리는 운동을 해야 어디 가서 운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맞다. 건강 검진 문진표에도 그런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땀을 흘리는 운동을 일주일에 몇 번, 몇 분 하나요?라는 질문. 그때 나는 땀을 흘리지 않았기에, 체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 것 같다. 모르면 실천을 못 해도 알면 실천을 하는 착한 나는 그 의사의 말을 듣기로 했다. 수영을 그만두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왜 나는 이유 없이 아픈가. 정크 푸드를 먹지도 않고 운동도 조금 하는데 억울했다. 왜 나는 살이 빠지지 않는가. 20대는 한 끼만 굶어도 핼쑥한 모습을 사람들이 알아봐 줬는데 지금은 많이 먹지 않아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포기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조금 안 먹으면 아프다. 조금 운동을 하면 아프다. 에이,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픈데 먹고 싶은 거나 실컷 먹자. 먹으려고 사는 거지, 살려고 먹는 건가. 이 나이에 살을 빼서 무엇하랴. 옛날 말로 이 나이에 미스코리아에 나갈 것도 아닌데. 다 때려쳐. 다이어트는 일찍 감치 포기를 했다. 그저 건강해지기만을 바라며 운동을 한다. (그래도 속마음은 뱃살만 빠지기를 바란다) 그런데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약할 수가 없다. 10분 걷기는 수월하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서 뛰면 금방 간다. 10분 뛰기도 좀 괜찮다. 이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리고 다시 10분 걷기를 할 때는 걸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 10분을 뛰어야 하는데 고비가 온다. 이제 그만할까. 30분이나 운동을 했는데 벌써 300칼로리를 태웠네. 여전의 나는 아마 stop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대략 한 달 후 매일 21km를 걸어야 한다. 겨우 6km로 이렇게 고민을 하는 내가 한심하다. 다시 10분을 달린다. 속도도 높인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는 또 10분 추가 걷기를 했다. 해야 한다는 목표가 정말 운동을 하게 만든다. 그 의사는 명의이다. 목표가 생기니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산티아고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 what made you come here? 질문을 한다고 한다. 미리 영어로 준비를 하라는 사람도 있다.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아들은 나에게 돈 주면서 군인처럼 행진을 하는 여행을 왜 선택하냐고 묻고, 남편은 요즘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나에게 종교적인 신념이 생겼냐고 묻는다. 딸도 눈을 크게 뜨고 나의 답을 기다린다. 글쎄, 늘 직관적인 선택을 하는 나에게는 그냥이라는 답이 정말 맞는 말인데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destiny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스타그램에 뜬 스페인 서점이 끌려서 무작정 가봤고 (심지어 스페인어를 모르면서) 거기서 산티아고 지도책을 사 왔다. 약 십 년 전에 우연히 심상정 의원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는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자연이 좋아서 캠핑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시골길을 걷고 싶은 것뿐이다. 이 모든 것은 운명이지 않을까. 그리고 40일 동안 아내, 엄마, 직장인, 사회적 위치가 아닌 나로 살아보고 싶다. 요즘 나를 잃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여전에는 더 자유로웠고 더 용감했다. 이제는 나이를 먼저 생각하고 사회적 체면에 맞는 얼굴과 행동을 한다. 그냥 내 이름으로 보내면서 엄마도 깊게 생각하고 싶다. 김애란 작가가 처음 등단 전화를 도서관에서 받고 함성을 지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말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함성을 지르라고 했다. 나도 순레길에서 나만의 애도 시간을 갖고 싶다. 엄마가 없는 인생이 나에게 다른 인생길로 전환이 되어 버렸다. 흐르는 강물이 다른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앞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생각도 해보고 싶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순례길을 가지 않아도 여기서 할 수 있다. 그런데 여행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 게다가 외국인이라 나를 편견 없이 볼 것이다. 편견 없는 시선이 나를 솔직하게,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순례자를 증명하는 증명서 (credencial del peregrino)는 생장에 도착하면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발급한다. 증명서가 있어야 알베르게 (albergue) 숙소에서 잘 수 있다. 증명서에 찍히는 스탬프 (sello)는 순례길을 증명한다. 알베르게와 레스토랑, 바에서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100km만 걸어도 콤포스텔라에서 순례길을 걸었다는 증명서를 발행해 준다. 크레덴셜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내야 하는데 길을 걷는 목적을 묻는다고 한다. 종교적인 이유, 문화적인 이유, 영적인 이유, 스포츠, 기타가 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스포츠와 기타의 이유일 경우는 증명서 발급을 거부한다고 한다. 나는 이래저래 살펴봐도 영적인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