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은

소설 4화

by 하루달


경찰서에 도착했다. 햇살이 따갑게 나를 쫓아오더니 나의 어리석은 발걸음에 화가 났는지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 재촉하는 듯 했다. 회색 건물은 더욱 나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기 충분했다. 삭막한 냄새가 난다. 덩그러니 무표정한 화분 하나가 큰 복도에 있다. 그들 사이를 지나 담당 경찰 앞에 앉았다. 7월 23일 엄마와의 전화통화 내역서, 통화 내용서, 병원 사망 진단서를 훑어보던 경찰은 죽음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물었다. 최근 근거 자료로 찾은 심장병 발병의 위험성에 대한 자료와 엄마가 일주일 전에 찾아간 동네 병원 진료 기록서, 한 달 전부터 아팠다고 말씀하신 친구의 증언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경찰은 그럼 왜 그 때 위험한 줄 알면서도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았는지 물었다. 바빴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경찰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장난하나” 라는 조그만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도 자기가 자신을 고소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좀 더 의논을 해야 하고, 또 지금이야 괴롭겠지만 뭐 이렇게까지 하냐, 보아하니 아이들도 있는 엄마 같은데 하면서 고소를 취하하라고 설득했다. 나의 의견을 무시하는 거냐? 중요해 보이지 않느냐는 대답을 모멸 찬 표정으로 하자 경찰의 태도는 달라졌다. 증거는 충분하니 재판에 넘기자고, 조사는 끝났다는 말을 억세게 던졌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끔찍하고 살벌하던지 나는 빰을 맞은 듯 벌게진 얼굴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나를 노려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한 채 죄의 무게를 실감하고 확신하였다. 그림자 없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건물을 나왔다.



나는 혼자 계신 이모가 걱정되어 매일 전화를 걸지만 이모는 절대 전화를 받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한국전쟁이 한참일 때 이모는 10살, 엄마는 4살이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갖은 고생을 다해 두 딸을 키우셨다고 한다. 이모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공장에서 일을 하였고 엄마도 마찬가지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보조 간호사로 병원에서 일했다. 거기서 엄마는 의사의 소개로 아빠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이모는 평생 혼자 사셨고 그래서 엄마를 많이 의지했다. 작은 엄마와도 같은 이모가 갑자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장례식 이튿날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모에게 다가가 안으려 하자 세게 밀쳤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무안하고 그 힘의 크기에 놀라 이모를 쳐다보았을 때 이모는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움푹 패인 주름에서 나오는 소리는 애처롭고 날마다 짙어지더니 메마른 낙엽같이 되어 버렸다. 바스락 바스락 사라질 것 같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조차 부끄러운 시간이 지나고 눈덩이처럼 커진 걱정은 이모에게 쏠렸지만 모진 해풍에 쪼그라든 북어 같은 모습을 하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네 탓이야 하는 흐리멍텅한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계셨다.

이모에게 편지를 썼다. 이모가 힘든거 안다. 나도 힘들다. 썼다 지웠다를 몇 번 한 후 이모에게 나는 재판을 받으니 증인으로 나와 달라는 사무적인 말만 쓴 편지를 붙였다. 이 후 처음으로 걸려온 이모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모가 집으로 찾아올까봐 아이들과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찾아온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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