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은

소설 5화

by 하루달

재판 날이다.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법원은 끝없이 많은 계단으로 압도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신이 우리를 내려 보며 너희 죄를 낱낱이 파헤치고 너를 어둠 속에 가두겠다고 벌써 으름장을 놓는 듯하다. 무기력한 죄인이 끌려가듯 나의 발은 천근만근 한걸음 내딛는다. 엄마와의 인연을 이렇게 쉽게 끝낸 고통을 몸으로 느끼며 달게 걸음을 다시 걷는다. 허전하기 짝이 없는 너른 공간에 빛 한줄기 흐른다. 신이 보이는 동정의 눈물인가 잠시 생각한다. 나는 나의 자리에 앉는다.


“지금부터 2012년 7월 24일 사건 번호 120349 피고인 김은영에 대한 사건을 심리하겠습니다.”

“검사측은 본 사건에 관한 모든 진술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피고인 김은영은 2012년 7월 23일 아침 9시에 친모 이선남 씨의 심장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고 그날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아 2012년 7월 24일 새벽 1시에 사망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친모 이선남 씨는 일주일 전부터 동네 병원 내과에 내방하여 진찰을 받았고 심장에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의 소견서도 받아 딸에게 알렸습니다. 또 이선남 씨의 지인분들의 증언과 이선우 친언니의 증언에 따르면 한 달 전부터 몸이 안 좋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부이자 자원봉사를 하는 직장을 다니지도 않는 딸 김은영은 바쁘다며 이를 외면했고 친모 이선남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니 이는 간접적인 타살이라 판단되어지고 유교의 나라인 우리나라의 불효에 대한 관습헌법에 따라 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벌금 2000만원과 징역 10년을 구형하는 바입니다.”

“검사측은 피고인 신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피고인은 친모 이선남 씨에 대한 간접 타살이라는 말을 인정하십니까?”

‘네.“

“피고인은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그리 바빴습니까?”

“그렇게 바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경찰 조사에서 바빠서 병원을 못 갔다고 하셨는데 그럼 핑계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피고인은 본인을 낳아주신 어머니 이선남 씨에게 불효를 저질렀다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네.”

“어떤 점이 불효하고 생각하시나요?”

“병원에 빨리 모시고 가지 않아 돌아가시게 한 점을 불효하고 생각합니다.”

"왜 병원에 가지 않은 건가요?"

"......."

"심장병의 위험성은 어린 아이들도 아는 상식인데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

"모든 죄를 인정하시는 건가요?"

"네, 인정합니다."

“이상입니다.”

“피고인은 변호사 선임을 거부한 상태이므로 본인이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발언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 사회는 지금 인정이 메말라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사람의 사정을 돌보지 않아 위험에 빠뜨리는 사례가 보도 되고 있습니다. 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방관하여 충분히 살릴 수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방관죄는 제 2의 사회적 타살이라는 중대한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는 어머니의 날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생명을 주고 모든 정성을 다해 키운 부모님에 대해 모두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기리는 것이지요. 특히 우리는 유교의 전통을 가진 나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프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 사랑에 대해 보답할 길은 무엇일까요? 모두 바쁘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자식들이 모두 늙으신 부모님을 보살피지 않는다면 이거야 말로 큰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은 모두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


나는 며칠 동안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듯 검사의 질문에 대한 답을 풀고 싶었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심장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엄마가 괜찮다며 월요일에 가자고 한 말을 왜 믿었을까? 나는 무엇이 성가신 것이며 무엇이 자꾸 엄마와의 관계를 멀게 한 것일까? 무슨 고약한 감정이 남아있는 것인가? 나는 태생부터 못돼 처먹었나? 나를 사악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깊숙이 쳐 박아둔 저 어둠은 무엇인가? 나의 엄마에 대한 통증의 얼굴은 무엇인가? 엄마의 얼굴이 보이자 몸이 마비된다.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소리친다. 소리가 나오지 않고 식은 땀만 흐르고 몸이 굳어진다. 후우, 웅숭한 한숨을 쉰다. 어두컴컴한 서글픈 증오는 나를 바라본다.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듯 통증을 느낀다. 녹슨 칼로 손목을 그어대는 듯 살기를 느낀다. 나는 공포 속에 빨려 들어간다.



“은영아, 어제 꿈에서 네 아빠가 나왔어. 대신 네가 죽고 본인이 살았다고 하더라. 나는 너무 좋아서 괜찮다고, 은영이는 다 이해할 거라고 했어. 이럴 수만 있다면. 아, 얼마나 좋을까? 아빠가 살아올 수만 있다면 말이야.”

엄마는 나를 앉히고 그렇게 넋두리를 하셨다. 울타리 같은 남편을 잃고 어린 딸을 붙들고 하소연하셨다. 나는 얼음처럼 굳어져 삐거덕 삐거덕 소리가 나는 인형이 되었다. 나는 이타적인 인형이 되어야 한다. 나의 목숨을 바쳐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는 심청이가 되어야 한다.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아빠 대신 사는 것은 죄이다. 엄마가 무척 슬퍼 보인다. 그 후 나는 봉사 활동을 했다. 아픈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났고 도울 일이 없나 물어본다. 손을 잡아주고 음식을 먹여주면 난 행복하다. 살아 있다는 게 실감난다. 지역사회에서 주는 봉사상도 여러 번 받았고 감사하다는 편지도 쌓였다. 그리고 솜사탕 같은 수채화 빛 봄날의 풍경은 아이들이 있는 나의 집이다. 나만의 가정을 빨리 가지고 싶어 애정도 없이 서둘러 결혼을 했다.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재잘거리며 빰을 비비는 손길 하나하나 따뜻하다. 그 무엇도 나를 강제로 임무를 맡길 수 없고 희생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계절 같은 시간이다. 나를 망설이게 하지도 않고 미루게 하지도 성가시다는 생각도 들지 않게 한다. 아픔이 없다. 아버지 없이도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를 두고 왔다. 엄마가 나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서였다. 내가 사라져야 아빠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떨어져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상처가 아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겉으로 상처는 아문 것 같아도 통증이 남아 흉터가 졌다. 거울을 통해 나만 볼 수 있는 흉터. 아무도 모르는 흉터를 모자로도 가리고 안경으로도 가리며 지냈다. 어느 날은 거울 속에 나의 흉터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어 다 나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얼굴에도 흉터가 보여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다. 아, 이 놈의 흉터를 없앨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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