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는 길은

소설 6화

by 하루달

증인석에 이모의 모습이 보인다. 이모는 나를 작고 깊은 눈동자로 애처롭게 쳐다보며 주름진 눈가를 연신 손수건으로 닦는다. 굽은 등이 더욱 초라하게 보이고 쪼그라든 손마디는 시리도록 파래보였다.

“검사는 증인 신문을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고 이선남 씨는 무슨 병으로 돌아가셨나요?”

“휴, 심장병이오.”

“증인에게 한 달 전부터 심장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나요?”

“그렇소.”

“증인은 어떤 말을 하셨나요?”

“병원에 가 보라고 하고 딸 은영이에게 알리라고 했지요.”

“그리고 이선남 씨는 병원에 갔나요?”

“그럼요.”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지가 알기로는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선남 씨의 딸이자 증인의 조카인 김은영 씨는 어떤 조치를 취했나요?”

“그러니까 다음 월요일에 병원에 같이 간다고 했지요.”

“그 얘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

“동생이 불쌍하지 않나요? 아직 한창 나이인데요”

“.......”

“재판장님,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유교의 정신 효를 중시여기는 나라였습니다. 600년을 이어온 유교 정신은 우리 민족을 지탱시킨 정신적 유산입니다. 또한 현대 사회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아픈 사람을 측은히 여기고 보살펴주는 정신은 중요한 의무입니다. 이를 관습 헌법이라고 하지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인 관행은 보편적이고 상식적이며 지속성과 강제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피고인 김은영 씨는 누구나 해야 할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본인을 낳아준 어머니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관습을 무시하는 것이며 관습 헌법을 위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재판장님, 우리 은영이는 평소에 자기 어머니에게 잘했어요. 그렇게 될지 누가 알았나요? 그리고 월요일에 가기로 약속을 했잖아요? 그러면 됐지.”

“증인, 심장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거 알고 계시죠? 여기 심장병의 발병과 죽음 연관 통계자료가 있습니다. 1분, 1초를 다루는 아주 미세하고 급박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응급처치를 배우는 교육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월요일에 가기로 미루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방치입니다. 그리고 한 달 전부터 아프다고 했잖아요. 그럼 병이 점점 악화될 수도 있구요. 이것은 간접 타살입니다.”

“나도 몰랐수. 그럼 나도 죄가 되겠네요. 나도 그냥 병원에 가보라고 말만 했으니까.”

“증인, 김은영 씨는 법적으로 가장 가까운 모녀 관계입니다. 자식을 낳아 힘들게 애지중지 키운 부모가 나이가 들어 편찮으시면 보살펴 드리는 것은 인간의 기본 도리입니다. 6살이나 어린 동생이 갑자기 작별인사도 없이 죽었는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우리의 죽음은 운명이오. 나이 순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운명이란 말이오. 은영이는 잘못 없소. 내가, 내가 다 잘못 했소. 흐흐흑.”

“내 동생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은영이 잘못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은영이는 지 오빠에 비해 공부도 많이 못했지만 군소리 없이 결혼하고 애기 낳고 성실히 사는 애라우, 지 엄마와 나를 살뜰히 챙겼다오. 조용한 성격이라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알뜰히 살림 살면서 없는 돈으로 우릴 보살핀 착한 애라우. 지금도 지만 잘못했다고 이렇게 재판까지 받는 거 아니오, 저 새파란 것을 감옥에 넣으며 새끼들은 어쩌란 거요. 은영이는 죄가 없다고, 없어. 흐흐흐.”



이모, 내가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에요. 나를 지독하게 잔인한 아이로 만드는 공포가 나의 몸으로 들어와 차지하고, 그 속에서 외로움과 사투를 벌이며, 불안이 내 곁을 떠나지 못하게 커다란 쇠사슬로 나의 다리를 묶고, 토막 난 기억 속에서 징그러운 감정을 느끼며, 죽음을 눈앞에 오게 만드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며, 나와 다른 나를 온 세상에 알리고 모두가 나를 저주하게 만드는 그런 죄의 값을 달게 받는 것. 그것이에요. 엄마가 느낀 그 고통, 그걸 느껴야 해요. 나를 동정하지 마요, 이모, 제발.



비가 이야기를 들으러 왔나보다. 나의 이야기가 궁금한가 보다. 화가 난 듯 퍼붓는 빗줄기는 우리의 말과 생각과 진실을 삼킨다. 세상은 나 같은 아줌마에게 무관심한 줄 알았는데 소곤소곤 거리는 소문이 벌써 내 등 뒤에서 들린다. 비와 바람은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앞다투어 전하려나 보다. 타인의 시선이 나를 오히려 자유롭게 만든다. 나도 모른 나의 모습을 이제 다 같이 공유하면 된다. 나의 따뜻했던 눈동자는 텅 비어있는 쓸쓸하고 잔인하고 무책임한 구멍이었다. 저기 또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늙은 아저씨가 앉아있다.

“증인은 고 이선남 씨와 어떤 관계이십니까?”

“....... 이선남 씨와 가깝게 지낸 친구입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남자친구지요.”

“이선남 씨 따님 김은영 씨를 아시나요?”

“....... 얘기만 많이 들었지, 얼굴 보고 인사는 아직 못한 사이고요.”

“저를 오늘 처음 봤을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 글쎄, 저도 많이 망설였습니다.”

“법적으로 무슨 관계도 아닌 제 3자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냥 따님이 몰랐던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어 나왔수,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높으신 분들이 생각하시구요, 그저 고인의 한을 푸는 심정으로 나왔수다.”

“......”

“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이선남 씨는 참 좋은 남편을 가졌더군요. 전쟁으로 겪은 가난과 고통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따뜻한 남자의 울타리에서 참 행복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하면 경제적으로도 힘들지 않았고 여기 저기 둘이 여행도 다니고 또 성격이 인정스러워서 많이 챙겨 줬나 봐요. 그런 사람이 갑자기 젊은 나이에 그러니까 45살인가 그 쯤에 사망하니 참 어이가 없고 낙심이 컸겠지요. 그만큼 그가 없는 빈 자리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구요. 그 때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라고 하더라구요. 내내 가정주부로 살다가 뭐를 해서 먹고 살지, 결혼도 안 시킨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무서웠다고,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구요. 잠시 아들에게 의지했다고 하더군요. 아들을 더 공부시키고 딸은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하게 했고 그저 결혼해서 아기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대요. 그런데 똑똑한 아들이 갑자기 외국으로 발령이 나고 좋은 곳에서 살겠다는 데 아들의 창창한 앞길을 막을 수 없어 가라고는 했지만 참 많이 서운해서 많이 눈물을 흘렸고 그 얘기를 저한테 하면서 우린 친해졌지요. 저는 아들만 둘이어서 그 마음 잘 알지요. 그런데 아들에 대한 서운함 보다 무엇이 이리 가슴 아플까 생각하니 문득 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오빠의 그늘에서 늘 치여 살던 딸, 만만해서 할 말 못할 말 다 퍼부은 딸이 가여워서 자기가 그렇게 울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미 딸은 저 멀리 가버려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뭐 그런 텅 빈 느낌을 받았대요. 모두 미안한 본인의 마음이겠지요. 나는 딸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사과도 하라고 많이 얘기해줬어요. 딸도 허전해서 저렇게 봉사하며 다니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많이 망설이더라구요. 자식들은 모릅니다. 부모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자식들에게 미안해 하는지 말이오. 그러면서 아프다는 말도 많이 못한 것 같아요. 사실 이선남 씨 이 곳 저곳 많이 아팠답니다. 심장만 아픈 것이 아니에요. 심장은 위험한데 너무 병원에 안가서 제가 동네 병원에 같이 간 겁니다. 제가 딸을 만나볼까 얘기도 했어요. 지나가는 말로 내 얘기를 했는데 딸이 아무 반응을 안 보이더라군요. 그렇게 시간만 흘렀지요.... 나와 있는 동안 딸 자랑을 하며 웃는 이선남씨는 참 많이 외로워 보였어요. 나와 집도 합치자는 말까지 먼저 했으니까요. 에휴, 진작에 합치고 떳떳하게 살 걸 하는 생각이 드네요.”

“........ 그런데 저렇게 재판을 받으며 자신 잘못이라고 하는 딸을 보니까 참 안타깝네요. 이선남 씨가 살아서 따님의 이런 마음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따님이 본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고 간 것 같아 그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인생 참 허무하네요. 인간은 참 어리석구만요. 휴....”

“네, 얘기 잘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증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김은영 씨는 오빠에게 차별받은 과거 전형적인 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 아무래도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모든 자식을 귀하게 소중하게 키웁니다. 고 이선남 씨는 자신이 아픈데도 딸이 걱정할까 봐 그리고 잘 해주지도 않았다며 미안해하며 알리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공정한 판결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김은영 씨에게 엄한 처벌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2012년 7월 24일 사건 번호 120349 피고인 김은영에 대한 사건의 판결을 선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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