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당신은?
마네의 "거울 앞에서" 그림이다. 여인은 거울과 굉장히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서 마치 거울 속의 여인인지 거울 밖의 여인인지 헷갈린다. 오른쪽 팔이 없었다면 구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여인의 상도 뚜렷하지 않다. 어떤 각도에서 그렸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고 거울의 구도는 잘려 있다. 여인이 입고 있는 코르셋은 거의 벗겨져 있다. 배경도 모호하다. 거울 앞의 여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모습에 취해 있는 것일까. 인상주의 그림은 그 순간의 장면을 인상 깊게 포착하고 있다.
거울 앞 여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수면 음료 속 향료처럼
그녀는 흐르는 맑은 거울 속에 살며시
자신의 피곤한 몸짓을 풀어 넣고
미소를 지어 완전히 넣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로부터 액체가 오르기를
기다린다: 그런 후 그녀의 머리카락을
거울 속으로 붓고, 경이로운 어깨를
야회복으로부터 들어 올리면서,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영상으로부터 마신다
한 사랑하는 남자가 도취 속에서 마실 것을
시험하면서, 불신에 가득 차 마신다. 그녀는
거울의 바탕에서 등불, 옷장들과
늦은 시간의 흐릿함을 발견할 때
비로소 시녀에게 손짓한다
윤동주의 시 속에 등장하는 유명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이다. '라이너'는 '다시 태어난'이란 뜻이고 '마리아'는 여자의 이름이다. 릴케의 누이가 어린 시절 죽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죽은 딸을 생각하며 이름을 지었고 릴케는 어린 시절 여자아이 옷을 입었다고 한다. 군사학교에는 적성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문학, 철학을 공부한다. 릴케는 오로지 시를 썼다. '말테의 수기"만 소설이다. 초기에는 쇼펜하우어와 니체, 유겐트스틸, 데카당스 영향을 받았고 주관적 감정을 토로한 시를 썼다. 로댕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직접 로댕을 만난 이후 그의 영향으로 시작이 바뀐다. 중기에는 로댕과 세잔의 영향을 받아 조형성을 추구하는 사물시를 주로 썼다. 후기에는 사물의 내면화, 영원화, 언어의 추상화를 시도한다.
1연은 그녀가 수면 음료 같은 거울 속에, 향료처럼 자신의 몸짓을 풀어 넣는다. 미소도 넣는다. 동사가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이다. 2연은 그녀가 액체, 즉 향료 속의 수증기가 오르기를 기다린다. 이는 자기가 하는 과정에 대한 성찰의 시간이다. 그런 후 그녀는 머리카락을 거울 속에 붓고 옷의 어깨를 들어 올린다. 시간이 단계적으로 흐르고 있다. 연속성을 가진다. 3연은 그녀는 자신의 영상을 마신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장면화, 형상화한다. 사랑하는 남자는 자신일 수 있다. 자신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시험하고 불신하다. 자기의 객관화, 거리 두기가 이루어진다. 이는 예술의 활동에서 가능한 것이다. 4연은 그녀보다 등불, 옷장들이 거울 속에 드러난다. 자신은 흐릿해진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시녀에게 손짓을 한다. 즉 나르시시즘을 극복했다.
"흐르는 맑은"이라는 독일 단어는 합성어이다. "흐르는"은 자기도취, 감정, 자유를 의미하고 "맑은"은 자기 객관화, 이성, 절제를 의미한다. 이 시의 주제는 거울 앞 여인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르시시즘적인 모습으로 자기도취에 빠졌지만 결국 거기에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자의 디테일한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르시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르시스는 소멸했다. 그의 아름다움으로부터
헬리오트로프의 향기처럼 진하게
끊임없이 그의 본질의 자취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가 자신을 보는 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서 나온 것을 사랑하여 다시 거둬들였다
그리고 열린 바람 속에 더 이상 담겨있지 않았으며
그리고 황홀하여 형상들의 주변 영역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양하여 더는 존재할 수 없었다
1연은 그의 아름다움이 향기처럼 피어오른다. 향기가 퍼지면 결국 사라진다. 덧없음을 의미한다. 그의 본질의 자취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수동적 운명처럼 정해져 있다. 2연은 자신을 거둬들인다. 자기를 타자화시켜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결국 자신에 빠져 다른 타자를 보지 못한 채 자신을 죽이는 운명이다.
2편의 시는 나르시시즘에 대한 것이다. '거울 앞 여인'은 나르시시즘을 극복했고 '나르시스'는 나르시시즘을 극복하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자기도취적인 면이 있어 이기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자와의 관계와 인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객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지 못한 사람은 결국 자신만을 사랑함으로써 외로워질 수 있다. 회화와 시의 연결이 흥미롭고 어려운 시를 같이 해석하는 과정도 무척 재미있다. 나는 오늘도 도서관 인문학 수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