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서편제"

소설

by 하루달





‘소년은 언덕 밭 무덤가에 고삐가 매인 짐승 꼴로 지내고 있다’에서 오이디푸스의 ‘부어오른 발’이 떠오른다. 오이디푸스의 발은 불구성, 인간 육체의 고유한 불완전성, 인간 존재 자체의 불완전성을 상징한다. 소년의 불구성은 아버지의 부재에서 시작하고 나이가 어려 고삐에 묶인 채 아버지 무덤가 근처에서 놀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상태이다. 또한 숲에서 들리는 소리꾼의 노래만 들을 뿐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소년을 지키고 있는 고삐는 어미만이 통제한다. 그 고삐를 따라 어미는 사라지고 돌아옴을 반복한다. 그 왕복운동을 지켜보는 소년은 불안과 안심의 감정을 오간다. 소년과 어미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상징하는 운명이다. 그 운명을 거스르는 소리꾼의 등장으로 어미는 딸을 낳으며 목숨을 잃는다. 끔찍한 운명 앞에 소년을 더욱 더 불완전한 상태가 되어간다. 소리꾼 남자를 따라 10년 동안 소리 구걸을 하며 지낸다. 정처없이 떠도는 모습에서, 깊은 통한과 허망스러움이 깃들인 소리에서 인생의 고통이 느껴진다.


또 다른 고통은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는 소년의 이중적인 마음이다. 소리꾼에게 살의를 품고 나서볼 엄두라도 낼라치면 소리꾼의 소리는 마치 무슨 마법의 독물처럼 육신의 힘과 살의의 촉수를 이상스럽게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곤 만다. 마침내 소년은 여동생과 소리꾼을 떠난다. 그러나 소릿재 주막으로 소리를 듣고 다시 찾아오듯 소년은 고통을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비극의 운명인 것이다. 이것은 그의 운명인가, 우연일까, 자유의지일까


아버지에 의해 눈을 실명한 여동생은 타인에 의해, 운명의 신에 의해 굴복한 모습이지만 소년은 스스로 소리를 듣고 온 적극적인 자유의지의 모습이다. 소리를 듣는 동안 소년은 몸을 불태울 듯이 뜨거운 태양의 불볕을 견디고 있었다. 마침내 소릿재 주막에서 들은 소리의 원천은 소리꾼의 소리임을 알게 되었을 때도 소년은 버티고 있었다. 소년은 소리꾼의 얼굴을 정확히 모른다. 처음부터 소리꾼에게는 실명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얼굴이 아닌 소리로 그의 본모습을 이해하게 되고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오디디푸스도 실명을 한 후에야 자신의 운명과 맞설 수 있었다. 소년도 소리꾼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고 소리로만 보고 있다.


소리꾼에 의해 실명한 여동생의 사연을 듣는다. 소년은 “사람의 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심어주려 해서 심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닐 걸세”라고 말한다. 소년은 비극적인 운명을 온 몸으로 느끼며 먼지처럼 쌓이는 한을 알아가고 있다. 소년은 마치 가슴이 끓어오르는 어떤 뜨거운 회상의 골짜기를 헤매어 들기 시작한 듯 두 눈길엔 이상스런 열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의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지는 것이다. 소년은 이 과정을 통해 소리꾼을 이해하고 닮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소리가 자신의 정체성임을 알아간다. 끔찍한 운명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고 버티는 과정에서 어쩌면 소년은 소리꾼을 용서하고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소리꾼을 미워하지 않는 지혜의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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