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의 "단순한 진심"

소설

by 하루달



조해진 작가의 < 단순한 진심>은 제 10회 여성인권 영화제의 표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피의 언어>책을 우연히 읽고 입양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책을 썼다고 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5살 즈음 철도에서 발견된 아이는 1년간 정우식 기관사의 집에서 정문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게 된다. 이후 2년간 나사렛 고아원에서 박 에스터의 이름으로 살다가 프랑스로 입양된다. 영화감독인 앙리와 학교 교사인 리사가 양부모가 되어 나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30년 후 연극배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중인 그녀에게 정문주 이름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담는 다큐 영화를 찍자는 제의가 들어와 한국으로 오게 된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정우식, 치매에 걸린 수녀님으로 인해 문주라는 이름의 뜻과 생모의 정보는 알지 못하지만 우연히 동네에서 만난 추연희를 통해 입양을 보낸 사람의 마음, 보낼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 생명을 품은 진심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이가 처음 가진 감정은 외로움이다. 대리인의 입양 동의서, 예방 접종 증명서, 입양 알선 비용 청구서로 아이를 입증할 뿐 아이는 호적등본, 출생 신고서가 없다. 아이의 처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이가 처음으로 울고 기고 앉고 서고 옹알거린 모든 모습을 기억해주는 가족이 없다. “나는 암흑에서 형성되어 암흑을 찢고 태어났다. 나의 근원은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영원이란 무형의 테두리에 갇힌 암흑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름이 없고 나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정보도 없이 나는 존재한다. 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로 우주에 떠다니는 작은 흔적이므로 나의 존재는 암흑과 같은 외로움이다. 또한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았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아 정처 없이 표류하는 사람이다.”는 표현도 있다.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과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 없다는 것은 찾아갈 곳도 찾아주는 사람도 없는 떠도는 인생과도 같다. 그녀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문주의 이름을 알고 싶어 한다. 최소한의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시도이다. 나나는 문주라는 이름을 사전에서 찾아 이렇게 스스로 해석한다. 문기둥. 문을 만들 때 양 옆으로 존재하는 꼭 필요한 기둥. 선의의 이름으로 빚어진 이름은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위로받는 느낌을 준다. ‘문주야’ 라고 부를 때 귓바퀴에서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중저음 목소리, 정우식 기관사가 업어줄 때 느낀 단단한 등뼈의 감촉, 머리를 쓰다듬은 부드러운 손바닥, 모든 감각과 기억을 소유할 수 있는 자체가 나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고 의미가 된다. 또한 정우식 엄마가 만들어 주신 수수부꾸미는 그 맛을 기억하고 혀끝에 맴돌게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주라는 이름을 찾는 과정에서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문주라는 이름을 먼지라고 스스로 해석한다. 한 곳에 정주하는 일 없이 흩어지며 살았으니까 스스로 무시와 조소를 섞은 먼지라고 해석한다.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까지 여긴다. 아무런 근거 없이 버림받은 마음은 극단적이다. 복구 불가능한 상실, 부모와 정우식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외로움의 극적 플롯이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보통 시간이 걸린다. 외로움과 슬픔의 감정에서 벗어나기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


처음으로 보호 받고 가족으로 지낸 위탁 가정에서 외로움은 잊어지는 듯했지만 고아원으로 보내지면서 증오로 감정이 바뀐다. 생모가 그랬듯이 기관사 역시 나를 버렸으므로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성공하더라도 다시는 찾지 않는다는 각오로 어린 문주는 작은 손거울을 공터에 묻고 한국을 떠난다. 생모에 대한 원망은 자신이 만든 이미지 철도에 그대로 나타난다.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도에서 발견되었다는 본인의 기억은 사실 대합실에서 발견되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철도는 문주가 생모를 미워하기 위해 구축한 관념의 공간이었다. 절대로 생모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감정을 봉쇄하기 위한 아주 근원적인 미움, 원망이었다. 생모를 상상할 때는 순하고 앳된 외모의 여자를 떠올리기도 하고 무지해서 더 무서운 여자, 그래서 자신을 죽음으로 가게 한 철도에 버렸다는 잔인함을 떠올리기도 하며 의식적으로 생모의 기억에 접근하지 않았다. 그 분노의 힘으로 자신은 버텼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무 기억과 기록이 없는 생모의 정보를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정우식 기관사를 찾는 모습은 역설적이다. 또 기관사 역시 자신을 품어준 최초의 임시 보호자이어서 고맙기도 하지만 고아원으로 간 자신을 한 번도 찾지 않는 모습에 서운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나나의 삶으로 사는 것은 마치 이식된 나무와도 같은 정체성이라고 한다. 앙리와 리사의 집에 도착한 첫날 나나는 악몽을 꾸었고 심한 배고픔을 느꼈고 문을 열면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트린 밖에서 사는 삶, 아무리 친밀한 사람이 생겨도 끝을 상정하는 마음이 생기고, 외식을 가도 가장 저렴한 음식을 주문하고 학교에서 정한 규율을 무조건 따르면서 내가 아닌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외로움 끝에 오는 무력감이다. 교묘하게 잘 감춰져 있다가 분출하는 모습을 보인다. 친근감을 느낀 추연희가 위탁한 아이 백복희를 벨기에로 입양 보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 그녀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고 도망친다. 관성이 되어버린 외로움과 세상을 향한 차가운 분노로 만들어진 나는 가장 두려운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외로운 노년을 보내는 추연희의 모습과 노파의 모습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이다. 나를 구성한 최초의 세포는 분명 비참한 상황에서 빚어졌을 거라는 생각이 무력감을 만든다. 그래서 나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스크린 안의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직업은 자신의 생에서 도망칠 수 있는 돌파구였고 감정에 지배받지 않으려고 스크린 밖의 자신을 두었다. 한국의 문주는 또 다른 나였다. 애정도 집착도 없는 결핍과 불안감이 반복되는 2년 동안의 고아원의 생활은 더욱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다.


추연희는 왜 처음 보는 나나에게 음식를 만들고 호의를 베풀었을까? 나나는 한국에 오자 마자 입덧을 하며 음식을 먹지 못한다. 그러나 연희가 만들어준 백순두부탕, 동치미, 수수부꾸미는 입맛에 맞고 고향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만든다. 뱃 속에 있는 우주가 받는 최초의 타인의 환대였다. 문주로 살면서 섬돌 위의 운동화를 보며 느낀 식구로서의 안도감과 같은 배가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입양을 보낸 복희를 생각하며 추연희는 나나에게 닮았다고 하며 잘 대해주었다. 추연희는 과거 복희와 엄마 복순을 왜 가족으로 품었을까? 추연희는 전쟁으로 갓 태어난 남동생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목격한다. 결혼해서는 첫 딸의 죽음을 만난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은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악착같이 생명을 앗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상실감과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자기 삶을 향한 환멸은 다시 생명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고 핏줄이 아닌 대안 가족을 이룬다. 생명을 구원하고 위로하는 용기 있는 그녀의 모습은 순도 높게 아름다웠을 거라고 문주는 생각하고 자신도 그런 추연희의 마음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녀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 문주는 배 속의 생명, 우주에게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생명을 점등하고 지켜내겠다고. 그리고 생모에게 단순한 진심을 전한다. 태어나고 구조되고 보호받고 누군가의 딸이 되고 배우와 극작가로 일하고 있으며 이제는 우주와 가족이 된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삶의 증거니까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달한다. 상실감은 슬픔과 애도, 우울의 감정을 넘어서 상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재평가하고 새로운 정체성, 희망을 찾게 해주었다. 희망은 현재의 깊은 괴로움과 절망으로부터 궁극적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안도감, 그동안 자신을 지켜주고, 환대해준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진심을 느끼며 다시 정체성과 함께 자신에게 온 생명도 소중히 여기며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하나의 생명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 삶으로 끌어들이는 용기있고 적극적인 자세로 바뀐다. 또한 스크린 밖의 주인공이 아닌 자신 삶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 이름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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