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

소설

by 하루달









무채색의 옷을 즐겨 입고 무난한 성격을 소유한 평범한 영혜는 단순히 꿈 때문에 채식주의가 된 것일까? 그녀가 느끼는 불안은 오로지 인간의 탐욕을 위해 짐승을 마구 죽이고 그 짐승이 흘리는 피로 범벅이 된 현대 사회에 대한 원초적인 폭력의 불안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전쟁터에서 참전용사였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아버지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벌어지는 살인을 정당화시키는 전쟁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육식을 해야 힘이 생긴다며 성인이 된 딸의 입을 벌려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고 한다. 반항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에게 무기력하게 폭력을 당하는 동안 그녀의 연약한 영혼은 무슨 빛으로 물들고 얼마나 지독한 것이 침잠되었을까? 꿈속에 나타난 시뻘건 고깃덩어리, 잇몸과 입천장에 닿는 물컹한 날고기의 감촉, 헛간의 피 웅덩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검은 피를 토해내는 축 늘어진 개, 그런 꿈을 꾼 후 영혜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육식을 거부하고 점점 음식도 거부한다. 사회 안에 있는 불평등한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자기 안에 있는 원죄의 불안, 폭력으로 얼룩진 내면의 끔찍한 것들을 모두 배출하듯이. 본인은 이제 동물이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녀의 불안은 본인을 사랑한다고 믿는 가족들에 의해 거부당한다. 비겁한 그들은 원죄의 불안을 감추며 산다. 사회적 성공, 부를 위해 약자를 희생시키고 피를 흘리는 사회적 제도에 기꺼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산다. 유일하게 태고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치고 싶어 하는 형부와 같이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그리고 동물도 아닌 식물도 아닌 목소리도 표정도 없는 나무 불꽃이 되려고 한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는 연극 같은 거짓 삶이 아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영혜에게 가족과 세상은 계속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차단되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이 된다. 불안을 이겨내고 아무도 해치지 않는 순수한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영혜는 순수하고 경외롭다.


폭력의 원죄는 인간 생존과 연관이 지어진 실존의 문제이다. 모든 동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는다. 식물만이 스스로 생명을 유지할 뿐이다. 태초의 인간은 순수했을까. 영혜는 순수하고 용감하다. 그녀에게 가해진 폭력은 여린 영혼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야수와도 같은 양육강식의 경쟁 사회에서, 그리고 여자들의 희생, 억압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남자들 중심의 사회 시스템 속에서 그녀들은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전히 자신 삶의 무대에 서기 위한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반면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일까? 견디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꿈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해진의 "단순한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