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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테의 수기의 그림 서술

by 하루달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시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유일한 소설은 "말테의 수기"이다. 주인공 말테는 이모 아벨로네를 사랑한다. 여섯 개의 벽걸이 양탄자에 대한 그림 서술을 통해 나의 마음을 전한다. 아이콘적 기호를 직접적 소통으로 시도한 것이다. 벽걸이 양탄자는 실존하는 그림이다.









<말테의 수기> 소설의 부분


"여인은 매에게 모이를 주고 있습니다. 그 얼마나 눈부신 의상입니까. 매는 장갑을 낀 여인의 손 위에 앉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인은 매를 지켜보며 시녀가 받쳐 들고 있는 사발에 모이를 주려고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펼쳐져 있는 여인의 긴 옷자락 위에는 비단 같은 털을 가진 조그마한 개가 앉아 있으며 위로 쳐다보며 자기도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낮은 장미 격자 울타리가 섬 뒤를 구획 짓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알아차렸는가요. 문장의 동물들은 문장답게 거만하게 곧추서 있는 것을 그대는 알아차렸는가요. 그 동물들이 두르고 있는 외투도 문장입니다. 아름다운 브로치가 외투 앞자락을 채우고 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미각










다음 양탄자에서 여인이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발소리를 죽여 다가갑니다. 그녀는 화환을, 꽃으로 된 작은 둥근 관을 엮고 있습니다. 여인은 이전의 패랭이꽃을 엮으면서 시녀가 받쳐 들고 있는 납작한 쟁반에서 다음 패랭이꽃을 생각에 잠겨 고르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벤치에는 장미로 가득 찬 광주리가 손을 대지 않은 채 놓여 있어 한 원숭이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는 패랭이꽃 차례이겠지요. 사자는 더는 흥미를 갖지 않으나 오른쪽의 일각수는 알고 있습니다. -후각










이 고요 속에 음악이 울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지 않았을까요? 여인은 무겁고 조용한 옷차림을 하고 휴대용 오르간으로 가서 (얼마나 느린 걸음걸이인가, 그렇지 않나요?) 선 채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시녀는 파이프를 사이에 두고 주인과 마주 보고 서서 송풍기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인은 여느 때 보다 훨씬 아름답군요. 머리는 기묘하게 두 갈래로 갈라 앞으로 가져와 머리 장식 위에서 위로 묶어 투구의 깃털 장식처럼 위로 솟아 있습니다. 사자는 포효를 삼키고 기분 나쁜 듯이 참으면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수는 율동을 하는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청각










섬이 넓어집니다. 천막이 세워져 있습니다. 푸른 무늬 직물과 금빛 물결무늬로 된 천막입니다. 동물들은 그것을 좌우로 걷어 올리고 여인은 호사스러운 의상이 거의 소박하게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걸어 나옵니다. 그럴 것이 그녀 자신에 비한다면 진주 목걸이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시녀는 작은 보석함을 열었고 이제 목걸이를 언제나 자물쇠가 채워졌던 묵직한 찬란한 보석을 꺼내 들고 있습니다. 작은 개는 여인의 곁 조금 높이 마련된 자리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천막 위 가장자리에 적혀있는 문구를 발견했는가요? '나의 유일한 욕망에게'라고 쓰여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왜 저 밑에 작은 토끼가 뛰어오르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토끼가 뛰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첫눈에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모든 것이 붙잡혀 있습니다. 사자는 할 것이 없습니다. 여인 스스로 기를 들고 있습니다. 아니면 기에 기대고 있는 것일까요. 여인은 다른 한 손으로 일각수의 뿔을 붙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슬픔의 표현일까요. 슬픔이 이토록 단정할 수 있을까요. 슬픔의 드레스가 군데군데 후줄그레한 곳을 지닌 검녹색의 빌로드처럼 이토록 잠잠할 수 있을까요- 촉각











하지만 아직 한 축제가 열릴 것입니다. 아무도 거기에 초대되지 않았어요. 그 축제에 기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영원히, 사자는 거의 위협적으로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무도 와서는 안 됩니다. 여인은 아직 이처럼 지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지친 것일까요. 아니면 그녀가 무거운 것을 받쳐 들고 있기에 주저앉아 버린 것일까요....하지만 그녀는 다른 팔을 일각수 쪽으로 기울이고 그 짐승은 기쁜 듯이 아양 떨며 곧추서 오르고 그녀의 무릎에 의지합니다. 여인이 받쳐 들고 있는 것은 거울입니다. 그대는 보고 있습니까. 여인은 일각수에게 그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벨로네, 나는 그대가 여기 있다고 상상합니다. 파악합니까. 아벨로네, 나는 그대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각




실제 <여인과 일각수> 그림은 미각, 후각, 청각, 촉각, 시각을 나타내는 그림을 순서로 하고 있고 마지막 그림이 천막이 쳐져 있는 것으로 모든 오감이 총괄되었고 '나의 유일한 욕망애게' 글자는 사랑의 결합을 의미한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결혼을 앞둔 이에게 선물한 것이다.

일각수는 유니콘으로 상상의 동물이며 성경에도 나와 있지만 중세부터 인식되기 시작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하고 처녀에게만 복종하여 일각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처녀를 이용했다고 한다. 일각수는 기독교 의미로 볼 때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 순결을 상징한다. 뿔은 구원을 의미한다. 현대 달리의 그림에도 뿔이 표현된다.

그림에서 거울 속에 비친 일각수는 관찰자의 상상이다. 실제 거울에 비친 각도가 아닌 좌우가 반대이기 때문이다. 거꾸로 된 시점은 신중심의 세계에 상응하여 신의 시선으로 그려진 것이다. 거울과 여인의 타원형의 이미지는 공허함을 암시한다.






오르페우수에게 부치는 소네트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오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 짐승

그녀들은 그 짐승을 알지 못했지만 여하튼

-그의 걸음걸이, 그의 자세, 그의 목,

그의 고요한 시선의 빛까지도 - 사랑했다



그 짐승은 존재하지 않긴 했지만, 그녀들이 사랑했기에

순수한 짐승이 되었다. 그녀들은 항상 공간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맑은 비워놓은 공간 속에서

그 짐승은 가볍게 머리를 쳐들었으며 거의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들은 늘 곡식이 아닌,

존재하리라는 가능성만으로 그 짐승을 길렀다

그리고 가능성은 그 짐승에게 대단히 강함을 주어



그 짐승은 이마로부터 뿔이 하나 돋아나게 했다. 하나의 뿔

한 처녀에게 그 짐승을 하얀 모습으로 다가와서

은거울 속에 그리고 그녀의 내면에 존재했다




1연에서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역설법으로 일각수를 드러낸다. 그녀들은 알지 못했지만 일각수를 사랑했다.

2연에서 그녀들이 일각수를 사랑하는 방법은 마치 아이들의 시선과 같다. 어른들은 갇힌 , 약속된 세계를 바라본다. 그녀들은 공간을 남겨두어 존재와 비존재가 교차하게 만든다. 거울 속에 존재하기에 실존할 필요가 없다.

3연에서 그녀는 가능성으로 일각수를 길렀다. 상상력은 가상을 존재하게 만든다.

4연에서 하나의 뿔이 그녀의 내면에 존재한다. 영혼의 거울이 된 것이다. 그녀들은 모든 감각들의 존속에서 해방되었다.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사랑이다. 따라서 상대가 없다. 소유하지 않는다. 여인은 어쩌면 남자들이 꿈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타자가 없기 때문에 자동사적 사랑이라 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페미니즘 시선에서 보면 남자는 나쁜 남자들이다. 여자를 대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시선에서 보면 여인은 마리아를 상징할 수도 있다. 나르시시즘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모든 사랑에는 이 부분이 조금 들어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의미도 포함이 된다. 따라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무조건적인 사랑도 존재한다. 종교의 사랑, 부모의 사랑, 정의를 위한 희생 등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 숭고한 사랑 안에도 나르시시즘적이 모습이 숨어 있는 것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내면이 아닐까 싶다. 나르시시즘이 좋다, 나쁘다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닌 본성을 파악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본성이 오로지 한 방향으로 지날 칠 때 이기적인 사랑이 되는 것이다. 시가 예술인 이유는 판단하고 비판하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우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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