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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

by 하루달

작가 토마스 만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설가이다. <마의 산>이 널리 알려진 소설이다. 평의원이었던 아버지에게서 절제, 규율, 지성, 시민성, 정신의 영향을 받았고 포르투갈계 브라질 출신 어머니에게서는 예술성, 감수성, 관능성, 정열의 영향을 받았다. 소설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주인공 아셴바하와 닮았다. 또한 작가도 실제로 베니스 여행을 간 적이 있으며 미소년 아치오에게 문학적 영감을 받는 점도 비슷하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폴로(아폴로) 신과 디오니소스 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폴로는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쌍둥이 아르테미스, 달의 여신은 누이이다. 태양, 궁술, 예언, 음악, 시, 의학을 주관하는 신이다. 월계수를 머리에 쓰고 늘 리라와 활을 가지고 다닌다. 까마귀, 백조, 백조가 끄는 전차, 늑대가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디오니소스(바투스)는 제우스와 인간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 인물이다.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이름이 지어졌다. 포도주, 다산, 광기, 황홀경, 연극, 죽음의 신이다. 황소, 사자, 염소, 뱀, 돌고래, 포도덩굴, 아이비가 상징물이다. 소설 속 지성과 감성의 충돌 배경이 되는 신화이다.


구스타프 아셴바하는 영웅 소설을 쓰는 저명한 작가이다. 어느 봄날 까다로운 글쓰기 작업을 하다가 산책을 한다. 석물 공장 주변에서 우연히 본 한 남자에게 내면이 확장되는 듯한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바로 여행을 떠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환상인지 열대의 늪지대가 눈앞에 나타난 듯한 착각이 든다. (디오니소스적 요소)

"그것은 일종의 정처 없는 마음의 동요나 젊은 시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목마른 갈망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생명력 넘치고 신선한 것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떨쳐버려서 잊힌 것이었다 그는 손을 뒷짐 지고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시킨 채 그런 느낌의 본질과 목표하는 바가 뭔지를 알아내기 위해 제자리에 붙박인 듯 멈춰 서 있었다." (421쪽)

그는 극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시켰다. 그의 도덕성의 승리였다. 그는 정신에 헌신하여 지나칠 정도로 인식만을 파고들었으며 실질적 성과는 도외시한 채 비밀을 누설하고 재능을 의심하고 예술을 배반했다고 느낀다. 예술이 비밀을 누설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작가는 제2자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관찰하고 서술하여 진리를 알고 있다. 진실은 항상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작가는 객관적인 시선에서 관찰하고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결국 작가는 자아가 분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아셴바하는 베니스로 향한다. 배에서 늙은이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역겨워한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곤돌라를 탄다. 무허가 사공은 뱃삯을 받지 않고 사라진다. 호텔에서 아름다운 미소년을 보고 그리스 조각품을 연상시킨다. 아셴바하는 타치오를 관찰한다. 그 아이가 가진 신적인 아름다움, 에로스 신의 두상과도 같은 매력에 빠진다.

"비할 바 없이 숭고하고 준엄한 표정에,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고수머리를 한 그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은 하늘과 바다 깊숙한 곳에서 내려온 귀여운 신과 같이 아름다웠으며, 이제 그 모습이 바다에서 달려 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태초의 시간, 형식의 기원과 신들의 탄생에 관한 시학 자체와도 흡사하였다." (464쪽)

미소년인 타치오에게 외모적인 아폴로적 아름다움을 발견한 아셴바하는 점점 디오니소스적 내면의 아름다운 매력을 느낀다. 동성애적 소유욕과 플라토닉 사랑이 혼합된다. 베니스의 탁한 공기를 쐬며 건강이 나빠질 것 같다며 아셴바하는 베니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짐이 잘못 부쳐졌고 그 일을 핑계로 그는 금방 호텔로 돌아온다. 스크라테스가 파이드로스에게 동경과 미덕을 가르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는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아름다움만이 우리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고 감각적으로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정신적 형태이니라. 그러니 아름다움은 느낄 수 있는 자가 정신적인 것에 이르는 길이다. 다만 길일뿐이고 수단일 뿐이니라" (482쪽)

베니스에 전염병이 만연하다. 정부는 관광객이 빠져나갈까 쉬쉬하지만 아셴바하는 눈치를 챈다. 그러나 타치오 가족이 떠나지 않아 그도 떠나지 않고 머무른다.

"이것이 베니스였다. 아첨을 잘하는, 믿기 어려운 미녀와도 같은 도시. 어쩌면 동화 같고 어쩌면 나그네를 유혹하는 함정 같은 도시. 이 도시의 썩어가는 공기 중에서 한때 예술이 향락적으로 번성했던 것이다."(498쪽)

강한 페놀 냄새로 뒤덮인 골목에 타치오 가족을 보고 쫓아간다. 길을 잃은 아셰바하는 이발소에 들러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호텔에서 마지막으로 타치오 가족도 떠나는 준비를 한다. 타치오가 바닷가에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셴바하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형식과 자유는 도취와 탐욕으로 치닫게 되고 고귀한 사람을 무시무시한 방종의 감정에 빠뜨린다." (526쪽)


제목처럼 아셴바하는 죽음을 선택했다. 왜 그는 전염병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타치오 옆에 있으면서 죽음을 선택한 것인가. 죽음의 동경은 고통을 벗어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예술의 한계, 감정이 철저된 예술의 답답함에 그는 베니스로 도망을 치듯 오게 되었다. 그리고 아름다움 미소년 타치오를 보고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타치오와 달리 그는 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타치오를 바라만 볼뿐 말 한마디 전하지 않고 그의 감정을 숨겼다. 억압된 욕망은 결국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죽음은 영원성의 상징이다. 무시간성, 자아의 해체 공간이다.

인간 행동의 밑바탕에는 경제적, 정신적인 자기 이익이 아니라 열정이 깔려 있다. 그 열정은 논리와 사리사욕을 넘어서는 동물적인 사나운 힘이다.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삶은 선이 아니다. 진실을 늘 선이 아니다. 오직 미, 아름다움, 예술을 향한 열정이 높아질수록 신체를 쇠퇴한다. 이를 데카당스라고 한다. 아셴바하는 타치오에 대한 열정이 넘칠 때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점점 긴장감과 피로감으로 신체적 퇴폐, 신경 쇠약에 이른다. 아셴바하는 화장을 하는 기괴한 행동까지 한다. 결국 타치오는 아셴바하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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