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라
손, 타인의 손,
얼굴보다 더 늙은 손은 너의 가슴을 향해 온다
한 번도 잡아주지 못한 손, 타인의 여윈 손
손 - 이성복
순례길은 자아를 찾기 위한 여행이므로 많은 사람들은 혼자인 시간을 원한다. 누군가와 같이 온 사람들도 각자의 시간을 갖다가 합쳐진다. 나는 자발적 혼자를 선택하고 시험하고 즐겼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돌볼 여유는 없었다. 타인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오히려 주제넘은 방해라 생각했다. 네덜란드인 미라레는 한 명의 할아버지와 같이 걸었다. 그가 천천히 걷기 때문에 같은 속도로 걸었다. 그가 외로울 것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걸었다. 그녀가 애초에 생각한 일정에는 맞지 않지만 그를 만난 이상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는 듯 행동했다. 나는 그녀를 보고 깨달았다. 아. 내가 순례길에서 놓친 것은 친절이구나.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으므로"라고 스코틀랜드의 한 목사가 말했듯이 순례길에는 힘든 싸움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리고 왔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왔고, 누군가는 혼자 걷는 것이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겉으로 고통이 드러나지 않아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기회를 놓쳤다. 자연이 그동안 그들을 위로해 주었겠지만 나도 미라레처럼 타인에게 조금 관심을 기울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 해도 이 공간, 이 시간에서 만난 우리는 특별한 인연이다. 미라레의 행동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타인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영향을 주고받고 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으면 기쁘고 감사하게 빚지고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으면 흔쾌하게 갚으면 된다. 이는 순례길에서 알려준 정의이다. 우리는 모두에게 빚지고 갚는 자연법칙이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살면서 관계를 채무 채권처럼 생각한다. 기브 앤 테이크는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호의를 단위로, 가격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호의를 베푼 사람이 바로 대가를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니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면 된다는 사고는 자유롭고 인간적이다. 호의의 행복은 관심을 주었을 때 돌아오는 부산물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을 때 진정으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산티아고 매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예전에는 친절이 부담스러웠다. 나도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친절을 그 당사자에게 주는 것이 갚는 행동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타인에게 받았던 친절을 다른 타인에게 주어도 되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지'라는 명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의 단단한 껍질이다. 찬란하고 눈부신 길 위에 그림자도 존재한다. 우리는 함께 가는 것이다. 나는 알베르게 방에서 만난 모든 이들과 인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영어를 못한다며 스페인어만 쓰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거의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남아메리카, 같은 스페인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사귀지 못했다. 이 점이 아쉽고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앱을 통해서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내가 타자에 무관심하다는 모습이 드러난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인다. 또한 MZ들은 타인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위축된다. 예의라는 정당함으로 가정한 무관심은 나의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러나 같은 방을 쓰면서 대화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어색한 공기가 흐르게 되어 있다. 영어가 좀 더 능통했으면, 스페인어를 조금 공부하고 올걸 하는 생각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래서 후회로 남는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오늘 도착한 그녀와 여러 명이 서로의 완주를 축하하며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는 나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들어주었다. 며칠 있으면 다시 아내, 엄마, 사회인으로 돌아갈 나에 대한 여러 감정을 그녀도 공감했다. 그녀도 아내, 엄마, 딸로 돌아갈 네덜란드가 있다. 그녀의 얼굴, 표정, 목소리, 몸짓은 잊어도 그녀의 친절했던 태도는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끈이 생겼다. 순례길을 걷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타인과의 관계와 순례자라는 공동의 이름이 생겼다.
'산티아고'는 스페인어로 성 야고보를 의미한다. '콤포스텔라'는 별이 내리는 들판이란 뜻이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파했던 성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한 것을 계기로 그를 기리기 위한 성당을 지었다. 중세 유럽의 수도사나 기독교 신자들은 성지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이슬람 세력이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을 정복하면서 성지 순례가 어려워졌다. 그 대안으로 이곳을 찾았다. 처음에는 종교적으로 성지 순례로 중세부터 시작되었다. 스페인이 무어인들에게 많은 영토를 빼앗기자 국토수복 운동으로 이곳이 시발점이 되었다. 1986년 파울로 코옐료의 소설 <순례자>가 산티아고 순례길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매년 삼십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걷고 있다. 지금은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개인적인 이유로 걷는 순례자가 많다.
오브라도이로 광장에서 순례를 마친 후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순례 증명서를 받는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정면의 중앙에 있는 제단에는 클라비호 전투의 영웅인 산티아고 조각상이 있다. 제단화 뒤로 가서 산티아고 상을 안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제단 아래에는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다. 낮 12시, 저녁 19시 30분 미사에 긴 줄에 향로(보타푸메이로)를 매달아 분향 미사를 드릴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