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나
"선생님, 1분 늦으셨네요. 벌금 천원 내세요"
"...."
자리에 앉기도 무섭게 내리꽂히는 바늘 같은 말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자기 시계로는 2분 늦었으니 2천원을 내겠다고 애써 실없는 농담을 건냈다. 그러나 분위기는 여전히 살벌하다. 더위는 언제 가나 한없이 이어지는 폭염에 고생한다는 말을 백만 번쯤 주고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 그 여름만 지나면 그새 가을이 왔네, 한 해가 다 간다고 난리를 치는 것처럼 냉랭한 회의 시간이 거짓말처럼 지나갔다. 이어 지부장은 개별 면담을 하겠다며 선생님들을 차례로 부른다. 친분이 있는 선생님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지부장이 뭐래?"
"회원을 더 늘리래. 우리 선생이야, 영업사원이야? 다른 학습지 회사는 상담교사가 따로 있다는데, 여기는 우리 보고 다 하라네.“
“저는 지금 회원으로 충분한데 왜 회원을 늘려야 해요?"
“그러니까. 누구 좋으라는 거야?”
"그래서 뭐라 했어?"
"그만 둔다고 못하고 푸후후, 10% 늘려보겠다고 했는데 방법까지 꼬치꼬치 묻고 계획서를 제출하래"
"어머, 겨우 10%가 뭐에요?"
갑자기 그녀가 끼어들어 대화를 주도한다. 자신이 처음 입사해서 회원 수를 늘린 모든 스토리를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는데도 펼친다. 그녀는 공공의 적이다. 열심히 해서 회원이 많고 그만큼 월급이 많은 것을 모두가 인정하지만 지나치게 잘난 척을 하고 다른 선생님도 할 수 있다며 반갑지 않은 독려를 하는 바람에 지부장이 집요하게 영업 전략을 세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며 그녀의 조그마한 실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걸고 넘어진다. 지각제도도 그녀 때문에 갑작스레 만들어졌다. 늘 바쁜 그녀는 지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오로지 실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지부장은 그녀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자 선생님들이 얄미워서 일 분마다 일 천원씩 벌금을 내는 제도를 만들었다. 또 그녀와 같이 점심을 먹는 사람이 없다. 다들 갑자기 선약이 있다며 나간다. 주변 식당에서 마주칠까 차를 타고 멀리 가서 밥을 먹을 정도이다. 그녀는 단체 카톡방에도 초대를 못 받았다. 회사에 관련된 일은 오로지 지부장을 통해 소식을 받을 뿐이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선생님들에게 잘해 주지만 그들도 한 달이면 분위기를 파악하며 슬금슬금 멀리한다. 그녀는 전국에서 최고 우수 선생님으로 뽑혀 본사에 가서 강의도 많이 한다. 선생님을 모집한다는 홍보 자료에도 그녀가 많이 활용이 된다. 그러나 그녀의 회원들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특이한 특징이 있다. 그녀의 수업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도 해주고 자기 같은 선생님을 따르며 몇 년동안 수업을 받고 그녀의 수업 방식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들은 철천지원수가 되어 안 좋게 끝나며 주변 사람들에게 악담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는 여전하다. 적당히 유머 감각도 있고 적당히 사람 비위를 맞추고 또 적당히 실력이 있다. 그러다 그녀가 갑자기 돌변하는 순간은 작은 방울 소리만큼 알아차리기 힘든 때이다.
박은희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의 집에 도착했다. 동욱이 어머니는 강남에서 큰 논술 학원을 운영하고 아이도 똑똑하다. 아버지는 대기업 연구직으로 일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아이가 제자라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홍보가 되는 셈이다. 또한 자신이 잘 가르친 것 같아 마냥 좋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타적인 계산을 다 떠나서 이상하게도 아이에게 힘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는 그녀는 아이를 시골풍경 같다고 생각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잠시 쉬는 것 같은 이 시간을 순수하게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그녀는 편안함을 주는 동욱이에게 정성을 쏟는다.
“동욱이, 잘 지냈니? 저녁은 먹었어?”
“안녕하세요, 네, 닭볶음탕 먹었어요”
“세상에, 엄마는 바쁘실 텐데 언제 요리도 다 하시고 나갔셨니, 동욱이는 엄마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 숙제는 다 했지?”
선생님은 동욱이의 숙제를 꼼꼼히 체크하고 수학, 국어, 한자, 사회, 과학 진도를 나간다. 동욱이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진도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에 더욱 집중을 한다. 동욱이 예상대로 10분 일찍 끝났다. 동욱이는 자신에게 친절한 선생님을 무척 따른다. 자기 집으로 드물게 오는 손님 같기도 하고 어른이지만 친구 같다고 생각한다. 속마음도 이야기하지만 엄마에게 비밀을 지키는 믿음이 가는 선생님이다.
“선생님, 오늘 조금 얘기 해도 돼요?”
“동욱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구나, 뭔데, 여친 생겼나?”
“아니요, 여친 아니에요”
“그럼 뭘까? 비밀이야기야?”
“네, 저 엄마 아빠한테 생일선물로 강아지 사달라고 할 건데 들어주실까요?”
“아, 강아지가 갖고 싶구나. 혼자라 심심해서 그러니?”
“엄마, 아빠도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셨대요. 어릴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그냥 강아지가 좋아요. 내년에 4학년 되니까 이제 스스로 키울 나이가 됐다고 설득할 거에요”
“동욱이가 똥과 오줌 치우고, 산책시키고, 목욕 시킬 수 있을까?”
“그럼요. 다 할 수 있어요. 들어주실까요?”
“선생님도 강아지의 좋은 점을 말씀드려볼까?”
“네, 도와주세요. 엄마가 선생님 얘기 잘 들어주시잖아요”
“알았어. 동욱이가 말씀 드렸는데도 잘 안되면 그때 선생님도 나서볼게. 숙제도 잘하는 똘똘이 제자를 위해서.”
박은희씨는 다음 방문에는 강아지 책을 들고 갔다. 동욱이는 소리를 지르며 팔짝팔짝 뛴다. 책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그녀는 책을 다 읽고 부모님을 설득할 근거를 찾아보라고 팁을 준다. 며칠 후 강아지랑 같이 살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 모두 선생님 덕분이라는 살가운 멘트까지 보내는 동욱이가 그녀는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