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다섯
-선생님~ 감자 뛰는 모습 귀엽죠?
-어머나~ 귀엽다, 고놈 맛있겠다. ㅋㅋ
동욱이는 선생님에게 감자랑 산책하는 사진을 보냈다. 그러나 선생님의 답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감자에게 맛있겠다고 하지. 더 이상 답을 보내지 않고 핸드폰 전원을 껐다.
-엄마, 박은희 샘이 감자에게 맛있겠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일까?
-어디 봐.
-아, 선생님은 이름이 감자라고 하니까 장난치신 것 같아. ㅋㅋ라는 말도 하셨네.
-엄마, 그래도 저는 너무 무서워요.
-에이, 장난이셔. 괜찮아.
-싫어, 싫어, 선생님이 감자에게 그런 장난하는 거 싫어, 감자는 먹는 음식이 아니야, 아니라 고.
동욱이의 괴성에 엄마는 깜짝 놀란다.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 걱정되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니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본다. 수업 중인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남편도 비록 선생님의 장난이지만 동욱이가 상처를 받았다면 말씀드리는 것이 낫겠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사과를 해야 당신들의 거룩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겁니까?
그리고 내가 뭘 그리 잘못했나요?
당신들, 보신탕 안 먹어봤어요? 당신들 부모님, 조부모님은 보신탕 한 번도 안 드셨어요?
내가 진짜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장난을 한 건데 아니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리냐구요?
내가 만만해요? 나 더 이상 사과할 마음 없으니 더 괴롭히면 협박 및 명예 훼손죄로 고발할 거니까 그럴 줄 알아요.“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집에 와서 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고는 막상 박은희씨를 수차례 문전박대 했다. 서로 주고 받은 문자를 캡처하고 녹음한 목소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공유하면서 불쾌한 소문을 내고 다녔다. 박 선생님은 도저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동안의 정도 있고 해서 여러 번 굽신거렸는데 지금은 그렇게 행동한 자신을 생각하면 할수록 피가 거꾸로 솟는 것처럼 화가 치밀어 올라 울화병이 들 정도였다. 선생의 대우는 고사하고 인간의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모멸감을 주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어디 가서 대성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살갑게 굴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돌변할 수 있는 것인가 배신감도 컸다. 오히려 동욱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차단을 했는지 답장은 오지 않고 찾아가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또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매일 문자가 득달같이 오고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선생님, 동욱이 회원이랑 무슨 일이죠? 아이 부모님이 지부에 전화를 해서 한바탕 난리를 치 셨어요. 저는 선생님 입으로 진실을 듣고 싶네요.
-지부장님, 동욱이는 제가 가장 아끼는 회원이에요. 근데 아이에게 장난 한마디 한 걸 가지고 부모들이 저렇게 오버를 하네요. 제가 수업에 늦은 적도 없고 학습에 관해 철저하게 관리하 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아이가 상처를 많이 받아서 울고 불고 난리라고 하더라구요.
-어이가 없어서. 오히려 동욱이와 저를 만나게 해주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아이도 장난인 것을 이해할 텐데 문전박대를 해요. 만날 수가 없다고요. 저도 할 만큼 했어요.
-아, 선생님을 만나면 더 아이의 상황이 안 좋아질 거라고 그런 거래요. 이제는 찾아오지 말 라고 하네요. 요즘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저한테 치료비 얘기도 하셨어요
-뭐라고요. 자신들 마음대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보고 치료비를 내라고요. 고작 그런 일로 정신과 치료요. 그 사람들 완전 오버 아니에요. 무슨 학원 원장이고 연구원이면 다냐구요. 사 람을 어떻게 보고. 나 그런 대우 받을 사람 아니에요. 그까지 개새끼보다 내가 더 못하다는 거예요, 뭐에요?
-선생님, 진정하세요. 저는 해결하려고 선생님과 얘기 중이잖아요.
-저는 이제는 전혀 사과할 마음이 없답니다. 그렇게 전해주세요. 치료비는 고사하고 나한테 다시 사과하라는 말도 전해주세요. 저도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어요.
동욱이 부모는 지부에서 사과를 받지 못하자 본사로 전화를 건다. 선생님의 자격이 없는 박 은희씨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본사의 책임이며 이번 일은 결코 가벼운 사건이 아니고 아이의 정신적인 피해가 큰 점을 고려해 박은희씨가 일을 그만두게 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는 방송에 이 사건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다시 지부장은 박 선생님을 불렀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너무나 굴욕적인 해고통보는 고사하고 지부장의 달라진 태도에 놀랐다. 다정했던 지부장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냉정한 표정으로 퇴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일을 크게 하고 싶지 않다는 본사의 결정이 떨어졌고 자신은 아무 힘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배신감과 모멸감에 몸이 떨렸다.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남편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다. 이런 것이 비정규직이 당하는 서러움이구나, 그동안 아무리 회원이 많았어도 소용이 없는 거구나. 자신들의 이미지와 이익을 위해서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만 없어지기를 바라는 송곳 같은 저들의 차가운 마음이 온 몸의 구멍으로 파고 들어 찌르는 것 같았다. 붉은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 방울 방울은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가 작은 흐느낌으로 변했다. 불어난 피는 굽이쳐 흘러 여러 갈래의 강물이 되어 여러 짐승의 울부짖음으로 변해갔다. 꼼짝 못하고 못 박힌 듯 서 있던 자리에는 어둠이 내리고 이어 암흑의 세상으로 변했다. 그녀는 방안에 보이는 물건들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갈기 갈기 찢겨진 마음인 양 물건들을 부수고 깨뜨렸다. 성난 파편 하나가 그녀의 발바닥에 박혔다. 다친 발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입술을 깨물었다. 가시 같은 조각을 빼며 나직한 신음 소리를 냈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는 현실을 애써 감추며 살고 있다가 들킨 것 같아 화가 났다. 학교 교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신분으로 열심히 가르쳤다. 어떤 때는 영업 사원 취급을 받기도 하고 그저 부모들의 시간을 때운다는 느낌도 받고 거대한 시스템의 소모품처럼 돌아다니고 가가호호 남의 집을 방문을 할 때 느끼는 어색함, 무언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불편한 시선을 애써 감추며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책상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공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무례한 사람들, 교육비를 부쳤다며 몇 개월을 공짜로 배우고 끝내 내지 않는 파렴치한 사람들, 더운 여름 날 시원한 냉수는 커녕 선풍기도 없이 아이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좁은 방에서 공부를 하라는 뻔뻔한 사람들, 공부를 하는데 거실에서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자기들만 밥을 먹는 이기적인 사람들,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데 모든 책임을 선생님에게 돌리며 화를 내는 몰지각한 사람들, 집에 없으면서도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아 헛걸음하게 만드는 못된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무식인 양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세상이 자기를 소비하고 있고 앞으로도 소비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도 무언가를 소비해야 한다. 감정의 쓰레기를 뱉을 곳이 없어 돈으로 보상을 받았다. 회원 수가 늘어갈수록 불쾌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달라진 교수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늘어난 숫자는 그녀의 명함이 되어 더욱 소문을 내고 회원 수를 더 늘려주는 역할을 했다. 그녀는 숫자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만족감을 채웠다. 그러나 이번 일로 그녀가 애써 숨긴 그 찌꺼기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그 사실이 화가 났다. 자기가 꽁꽁 숨겨둔 치부를 그들이 허락도 없이 꺼내는 것이 불쾌했다. 꺼내도 자기가 꺼내고 버려도 자기가 버리고 싶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좌절감은 그녀의 썩어 문드러진 속살을 그대로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발가벗겨진 그녀는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처음부터 가야 할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는 하루에도 여러 번 물컹물컹한 이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가슴의 찌꺼기를 토해낸다.
다음 날 박은희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명예훼손과 부당한 해고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을 들었다. 동욱이 부모를 상대로 명예훼손을, 회사를 상대로 부당 해고로 고소하기로 결정했다. 차근차근 뒷조사를 하던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욱이 아버지가 근무하는 그 회사는 최근 동물보호단체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대중들의 공격도 받아 주식도 내려가고 있어 회사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박은희씨는 가소로운 듯 웃었다. 자신은 잔인하게 동물 실험을 하는 주제에 맛있겠다는 말 한 마디에 고소를 하고 회사를 그만 두라고 남의 인생을 망치려는 파렴치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게시판에 악플을 남기고 국민 청원에 가서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는 글에도 잔인한 댓글을 달았다. 다음 날은 여러 포털 사이트에 학습지 교사의 애환과 일방적 퇴사 명령을 받은 사연을 올렸다. 주변 친척과 친구, 지인들에게도 전화를 걸어 동참을 부탁했다. 그러나 회사 동료들은 한결 같이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그동안 친하게 지낸 동료가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자신을 위로했다. 모르는 타인의 댓글이 하염없이 고마웠다. 반면 회사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를 고용했다. 창사 이래 가장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직원들을 위한 복리가 형편 없어 명절에도 치약 세트만 주고 현금영수증과 모든 책임을 선생님들에게 떠넘기는 가난한 회사가 어마어마한 변호사비를 대며 그녀를 해고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그녀가 올리는 포털의 글은 하루 만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믿을 것은 국민 청원뿐이지만 며칠 지나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공감해주며 같이 울분을 터뜨리던 사람들은 피해자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다른 호기심으로 가득 찬 기사를 찾아 떠났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삭제되었다. 외로운 그녀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하듯 서서히 상대방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결국 박은희씨는 변호사비만 날리고 회사에서 퇴사하게 되었다. 그녀는 절망감에 빠져 여전히 행복해 보이는 동욱이 식구들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 할 일이 없어진 그녀는 동욱이의 식구들을 하루종일 미행했다. 항상 감자가 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