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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달 Jan 26. 2022

검사받지 않아도 되는 독서감상문

김종광의 < 산 사람은 살지> 를 읽고





 책을 읽는 도중 생각나는 사람은 여러 명이었다. 나의 부모님 이야기 같았다. 책 속의 기분(어머니)처럼 엄마도 손이 큰 편이셨다. 엄마는 맏며느리다웠다. 푸짐하게 베풀어야 자식들이 잘 된다고 엄마도 어릴 적부터 배웠나보다. 할머니, 삼촌, 작은 아빠, 고모네 무려 18명이 명절마다, 제사마다 모였다. 그리고 열심히 조상들에게 비셨다. 어릴 적 나는 잔치가 열리는 것 같아 엄마의 고생은 전혀 모르고 달력에 언제 제사인지 표시도 하며 기다렸다. 그날은 나를 예뻐하는 삼촌들도 보고 용돈도 받고 사촌들이랑 밤늦게까지 놀고 동그랑땡에 식혜도 먹는 날이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 조상은 있기는 한 것이냐 한탄을 하시며 엄마는 제사 지내기를 무엇보다도 끔찍이 싫어하셨다. 한 번도 뵌 적도 없는 시할아버지, 시할머니 제사까지 정성껏 지냈는데 그분들이 너무나 일찍 아버지를 데리고 가셔서 아마도 배신 당한 것 같은 기분이셨나보다. 작은 아빠랑 제사일로 여러 번 싸웠다. 오랜만에 부산에 사는 나의 집에 오셔서 아이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제사를 지내야 하니까 올라오라는 전화를 받고 엄마는 화를 내셨다. 이제부터 당신은 제사를 안 지낼 거니까 아들들이 제사를 가져가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러나 엄마는 시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날 정도의 신여성은 아니었다. 의가 상하면 며느리 탓을 하는 시집 식구들이 밉지만 자식들을 봐서 또 참으셨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면서 결국 서울로 올라가셨다.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은 것 마냥 말씀하셨다. 너무나 답답해서 점을 보러 갔는데 엄마 이름이 아빠에게 평생 봉사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란다. 이름이 문제였다. 그래서 당장 개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장남인 아버지를 만난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살아계실 때는 참을 수 있는 이유가 분명 있었는데  버팀목이 사라지자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셨다. 그저 제사 지내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닐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혼자 남은 엄마는 얼마나 허망하고 또 허망했을까. 그때는 결혼하기 전이어서 상상을 할 수도 없었지만 혼자 자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과 혼자라는 외로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남편의 자리는 상당했을 거라 생각든다. 그런 엄마에게 며느리역할을 강요한 친척들이 밉다. 그리고 외로웠을 엄마를 많이 이해해주지 못한 나도 밉다. 엄마와의 마지막 여행길에 아빠가 그립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빠랑 여행갔던 일, 아빠가 노래를 가르쳐준 일 등 사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남편과 사이좋게 재미나게 지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무도 남편 대신할 사람은 없다며 잘 지내라는 유언의 말씀을 남기셨다. 목이 메였다.  아빠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엄마의 슬픔이 여전히 커보였다. "엄마, 벌써 우리 아빠를 못 본지 22년이 흘렀네. 엄마, 22년동안 남편 없이 어떻게 살았어? 보고 싶은 마음 어떻게 참았어? 오빠나 나나 동현이나 모두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지? 진짜 미안해" 말하려다 목이 메어 아무말 못하고 눈물을 훔치며 운전만 했다. 





 소설 속 기분( 어머니)은 막내 며느리이지만 친정집이 방앗간을 해서 어릴 적부터 일하는 사람 밥을 해주느라 손이 컸다. 남편 생일상에 마을 사람들을 부르고 제사, 친척들 생일상에 쌀을 가지고 술도 만들었다. 본인들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너무 손이 큰 것인가 생각도 하신다. 농사에 목축업에 탄광일까지 하신 아버지, 같이 농사일을 거들고 제과점에서 남의 과수원에서 잡일하며 살림을 도운 어머니 두 분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셨지만 가난했다.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병원에 많이 다녀서 그것때문에 가난한 것인가 푸념하는 모습이 나의 부모님의 모습과 같아 안쓰러웠다. 시골에 사나 도시에 사나 왜 이렇게 사는 것이 어렵고 팍팍한지. 외벌이 하시는 아빠의 어깨가 점점 처지자 엄마는 갑자기 미용 기술을 익혀 미장원을 차리셨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이다. 동생은 늘 학용품을 챙기지 못한다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했고 나도 언제부터인가 밤이 무서웠다. 빨리 두 분이 돌아오셨으면 아무리 우리 셋이 놀고 있어도 시간이 빨리 가지 않은 느낌이었다. 장남인 아빠와 맏며느리 엄마는 시집에 들어가는 돈에다 자식을 셋이나 공부시키느라 허리가 휘었다. 무지개가 떴다며 전화하시는 낭만파 아빠가 남긴 일기장에는 오직 돈이야기뿐이었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또 빚을 졌다. 아껴야 한다는 글자들. 엄마도 돈을 아끼고 또 아끼셨다. 엄마 친구분들도 나에게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어머니처럼 알뜰하신 분은 세상에 없다고. 칭찬은 아닌 것 같다. 나도 지금껏 아이들 키우면서 힘든 고비 넘긴 순간도 떠오른다. 남편은 외벌이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은 나중에 벌면 되지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늘 고비는 왔다. 부족한 살림은 힘이 들었다. 일을 해야지 해야지 그러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들만 바라보던 나는 이제 엄마에게도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김에 기뻤다. 그러나 옛말처럼 부모님은 애석하게도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작가는 농촌을 미화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신랄한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진실에 가까운 실록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가 농사를 한다고 해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이 가득한 시골에서 첫째 아들, 며느리, 둘째 아들, 사위, 딸 모두 동원되어도 어머니는 밭에 나가셔야 한다. 자식만 기다릴 수 없어 다시 밭으로 나갔다가 다음 날은 병원에 가는 일이 반복된다. 농부이기에 그대로 볼 수 없는 마음은 아버지가 항암 치료를 받는 도중에도 김을 매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목축업의 힘든 구조적 문제도 경험담으로 보여준다. 한우값이 떨어지고 구제역 전염병으로 손해를 입어도 사료값은 그대로이거나 인상되어 농부들은 도시인들처럼 이자만 내느라 고생만 하고 이윤이 남지 않는다고 한다. 시골에 살기를 꿈꾸었던 나는 얼마나 철없는 생각을 했는지, 그들이 들으면 불쾌하기까지한 생각을 했는지 부끄러웠다. 나는 힘든 와중에도 끈끈한 친척들의 정 그것때문에 사람이 그리워 시골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진짜 친척들이 모두 마을에 사시고 이웃사촌으로 가득한 사람 사는 곳이다. 엄마처럼 사는 우리들의 세대는 거의 없다. 손이 커서 친척에게 지인에게 베푸는 일도 적다. 모두 너무나 바빠 정을 나눌 시간이 우선 없다. 다시 한번 철없이 시끌벅적 집에 손님으로 가득한 풍경을 그리워한다. 시골에서 사람을 부르는 애칭은 재미있다. 타령댁은 타령을 잘한다. 화장댁은 화장품을 판다. 기억댁은 기억을 잘 한다. 만덕댁은 제주도 김만덕의 이름을 땄다. 생선댁은 생선을 판다. 전도댁은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한다. 오지랖댁은 기분(어머니)이다. 오지랖 넓은 그녀는 부녀회 총무를 맡으면 패가 갈리지 않고 깨질 판도 다시 화합하게 했다. 뒤에서 욕을 하는 얄미운 이웃이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저 옆에 있어준다. 어스름이 깔리는 시골속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오늘도 따뜻할 것이다. 도시의 연기에도 생명이 깃들길 엄마의 마지막 말처럼 사이좋게 베풀며 살아야지 다짐을 해본다. 나는 손 큰 여자의 딸이다 





어머니의 그륵

-정일근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 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 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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