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를 하늘로 붕붕 뜨게 만든 말 세 가지가 있다. 궁금한 것이 해소되었는지 초등학생이 말한다. "선생님, 서울대 나오셨어요? 모르는 거 없죠?" 중학교 3학년까지 수업을 하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헤어지면서 준 편지에는 "선생님 존경해요"라는 말도 있었다. 나는 학창시절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아니고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도 혼나지는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울 뿐 혼내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왜 나는 제대로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까 나름 분석을 해보면 모르는 것이 바로바로 해결이 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기초가 탄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사회가 만든 시험이라는 문제에 정답을 쓰지 않았다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불공평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틀 안에 갇혀있다. 친정 식구들조차 내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남편 머리를 닮았다고 대놓고 농담을 한다. 아이들은 상처 받은 엄마를 위로한다. 그래도 나의 공간에서는 나는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부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더 정이 가고 왜 모르는지 이해한다. 그래서 쉽게 설명을 해주려고 애쓴다. 어느 나라는 아이들이 성적이 나쁘면 교사들이 부모에게 사과한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고 잊지 않게 반복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나를 웃음 짓게 만든 두 번째 말 "선생님, 여기 꿀 발라놓으셨어요? 왜 아이들이 여길 이렇게 좋아해요?" 걸걸한 목소리로 한 학부모가 말한다. 그녀는 마당발이다. 고맙게도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를 많이 시켜준다. 나이가 젊지도 않은 나를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것에 감사한다. 알고 보니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나이가 많다고 적다고, 남자라고 여자라고 겁을 먹지도 않는다. 인정이 많다. 핸드폰이 바뀌어도,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도 알은척 해주는 아이들이 참 예쁘다. 나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특히 학원을 그만둘 때, 이사 갈 때, 진학할 때는 편지와 선물을 준다. 그러나 학부모와는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아이들의 발달 상황을 칭찬해 주는 문자를 보내고 궁금해서 전화주는 학부모만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해준다. 이 부분이 사실 딜레마처럼 힘들었다. 아무래도 부모들은 더 잘 했으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교육관과 안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천천히 가는데 빨리 효과가 드러났으면 하는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너무나 잘 하고 있어 딱히 상담할 부분도 없다. 아이들과 더 잘 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스스로 결정짓고, 모든 것을 아이들과 직접 소통하려고 한다. 아이들의 말에 경청하고 비밀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신만의 글을 쓰기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이 많이 담긴 글을 많이 본다. 아이들에게 굉장히 사적인 부분이라 늘 조심스럽고 용기 내어 표현한 글을 보고 마음으로만 공감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세 번째 기분 좋은 말은 "선생님, 이 책 읽어보셨어요? 진짜 재미있어요. 우리 이 책으로 수업하면 안돼요?" 이다. <해리엇> 책이 바로 아이가 추천한 책이다. 아이가 추천했다는 것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미라 고마웠다. 그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에 너무나 행복했다. 읽어보니 좋은 책이라 바로 교재를 만들었다. <모모> 책도, <헌법 이야기> 책도 아이들이 읽고 싶다고 추천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