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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05. 2016

대구




대구한의대학교, 지붕으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별을 구경하곤 했다. 밤에 혼자 소주병을 들고 학교며 산을 유령처럼 돌아다녔다. 복숭아나무로 뒤덮인 산이라 주인이 따로 없어도 서리하는 심정으로 복숭아를 따먹었다. 동아리방 특유의 어지러운 유화 냄새, 추억 많은 사람이 부자라던 너의 말, 우린 고작 스무 살이었는데, 하루 중 세 시간을 보내야 했던 스쿨버스.

쟁이의 상징 같았던 양초 담긴 컵. 2500원이면 마실 수 있었던 버드와이저. 기본 안주는 새우깡이었다. 다소 시끄러웠지만 친숙한 음악들과 나 자신까지 사라질 듯한 그곳의 어둠이 좋았다.

학사주점 골목에 있는 동창의 레몬소주, 그땐 레몬소주가 유행이었지. 계산하고 나올 때 아주머니들이 직접 손에 쥐어 주는 사탕에 감격스러워하곤 했다.

장기동 PC방, 할머니 홀로 운영하는 포장마차의 우동은 딱히 맛있다고 할 수 없었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해졌다. 사람을 무척 따랐던 공원의 길고양이들. 내 집처럼 드나들던 지현이네 집.

Kim's kitchen 의 밀크티와 시나몬 토스트.  자릿세 문제로 얼굴을 종종 멍으로 물들였던 주인과 직원. 그곳이 사라진 뒤에도 바뀐 상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아렸다. 몇 년이나. 

계명문화대학교, 1113호, 유일하게 즐거웠던 일러스트레이션 수업, 라이브러리의 담배 연기, 연담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듯 느껴졌던 한학촌, 속까지 거북해지는 학생식당의 클래식.

실용음악학원 락앤재즈 아카데미. 겨울 동안 효의와 나는 그곳을 점령하다시피 했었다. 계명대학교 안으로 숨어들어 먹던 한솥도시락, 그때의 코끝 시리던 겨울 냄새가 아직도 그립다. 

공구 상가의 필인 합주실. 서툴렀던 Breaking the law의 전주를 떠올리면 아직도 실소가 나온다. 고량주와 막걸리에 휘청이고 끌려가듯 군대로 가는 아이들. 

악기랜드. 수성구청의 전구 장식도 아름다웠지만 학생들의 눈빛이 더 반짝였다. 음주 레슨을 떠올리면 내가 선생을 꿈꾸지 않아 다행이라 여겨진다. 

향교 근처의 합주실. 여름에도 떨리던 냉기와 귀신 이야기는 절묘했다. 플라시보와 전구 불빛, 바카디도 괜찮은 조합이었다. 합주실에 차오른 물을 퍼내며 장마를 보냈다.

서문시장의 사무실과 고양이들, 비 오는 날마다 사다 마시던 소주의 맛, 달성공원 옆 중국집의 야끼우동과 짬뽕,

화교 아주머니가 효의와 나를 알아보고 친근히 말을 걸기 시작할 때쯤 우리는 대구를 떠나 버렸다.  

이것들이 애틋한 추억이 된 건 내가 비로소 그곳에서 멀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서문시장 쌀집 고양이. 주인 아저씨가 쥐를 잡지 않고 어딜 싸돌아 다니냐, 호통을 쳐도 지지 않고 야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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