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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Mar 05. 2016

악몽이었을까



꿈속을 헤매다 문득 배가 고파져 눈에 띄는 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은 간단한 안내를 해준 뒤 다시 만납시다, 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향신료와 차 코너를  지나자마자 바로 큰 규모의 서적 코너가 나타났다. 팻말만 무심코 훑고 지나치다 책 하나하나의 제목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책을 펼쳐 들어 시간이 가는 것도 모르고 빠져들었다. 책 속에 담긴 건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흥미로운 동시에 거북한 그림과 글들이었다. 배고픔이 잊힐 정도로 책을 읽으며 행복함을 느낀 건 대체 얼마만인지.                                                         

열 권 남짓 장바구니에 넣었을 때였던가. 두 명의 여자가 주인 몰래 들어가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제야 책장 사이마다 자리한 작은 문들을 발견하게 됐다. 눈으로 보기엔 한 사람도 지나가기 힘들 것처럼 보이는데, 곁눈질로 관찰해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다 문 안의 좁은 통로로 재빨리 몸을 구겨 넣었다. 통로의 내부는 칠흑 같았고 들어가는 사람은 있어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에 더더욱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다 마침내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내 옆에 자리한 통로로 향하며 눈이 마주친 것은 통로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구실이 되었다. 그 사람은 문을 열며 대답했다.

"좁은 통로의 끝에는 영혼의 짝이 있어."

궁금했던 것이 해결이 되어 다시 책에 빠져들 수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통로의 문이 열리고 칼을 쥔 손이 튀어나왔다. 그 칼이 나를 향하는 것임을 알았지만 꿈이어서였을까,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몇 차례 찔리고서 주저앉은 다음에야 가게의 주인이 나타났다. 눈 앞이 점점 흐려졌다. 미안해하며 주인은 말했다. 통로의 끝에서 영혼의 짝을 만날 수 있지만 함께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그리곤 꿈에서 깨어났다. 꿈 이야길 적어두고 싶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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