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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Aug 09. 2022

자기 분에 못 이겨서 사는 삶

회사에서 유독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까지 할 건 아니지만 솔직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싸움이라도 한 판 시원하게 했을 터였는데 지금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만다.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진 성격, 그리고 사고방식을 조합하면 나라도 그 상황에서 나한테 그럴 것 같다. 내 행동 중에서 그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미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훨씬 많이 수그러드는 편이다.


덕분에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그 사람에게 차분하게 그런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하거나, 혹은 그마저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설령 자꾸 귀찮게 하더라도 내 스스로가 단단하다면 별 문제가 없을 터이니 굳이 말을 해서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을 겪을 이유가 없기도 하다. 그런데 아직 내가 그 정도의 수준이 안되다 보니 언제 한 번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요즘 자꾸 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런 글을 쓴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나 스스로를 다잡아 본다.


누군가에 의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미움, 분노, 그리고 복수의 마음이 드는 것은 누구나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럴 때는 그냥 조금 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 역시 스스로 괴로워서 저러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저렇게 발악하는 것이고, 하필 그 주변에 내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그렇게 되지 않는 원인을 나에게 투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문제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주변 환경을 본인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왜곡된 욕심인 셈이다. 만약 내가 이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사람에게 똑같이 화를 낸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을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서 화를 내는, 그러니까 앞서 이야기한 분을 못 이기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내가 좀 더 이 상황을 개선시키고 싶다면 이 사슬을 내 안에서 끊어내는 것이 좋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까지 참는 것은 옳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조금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서운하다는 표현을 했을 때, 그 사람의 기분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과, 내가 그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사고방식, 그리고 그 사람의 기질을 감안하면, 그 사람이 섭섭해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섭섭하다고 하는 그 사람의 생각은 존중하되, 내가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혹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는 순간, 나 역시 내 생각과 반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나의 입장,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 나의 기질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나 역시 분에 못 이기게 되고 화가 난다. 그리고 나는 그 화를 그 사람에게 돌리게 될 것이다. 옆에서 자꾸 서운하다고 징징거려서 짜증이 난다와 같은 표현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서운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것은 그 사람이 서운하다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 사람에게 뭔가를 해주기가 싫기 때문이다.


모두는 각자가 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면 분노가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분을 못 이겨서 그 분을 주변에 표출하고, 그렇게 시작된 감정은 오고 감을 거듭하면서 증폭된다. 이 고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나부터 내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에 휩쓸려 분을 못 이기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분에 못 이겨서 산다라는 말을 다시 돌려서 이야기하면, 모두 자신의 욕구를 좇아서 산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모든 화는 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지, 타인에게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비폭력 대화는 그런 욕구를 돌아보는데 효과적인 방법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사람이나 그 사람과의 오고 가는 대화나 행위에 주목하기보다, 내 안의 욕구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화를 내는 원인에서 외부 요인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이다. 어떤 감정이 발생하였을 때, 나의 어떤 욕구가 충족, 혹은 충족되지 않아서 그런 감정이 발생하였는지를 들여다보게 되면, 어느새 이 일은 온전한 나의 일이 되고, 타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일이 된다.


그러니 누군가 서운하다고 징징거려서 화가 난다면,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 욕구가 부정당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서운함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혹은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더 친절을 베풀거나 격식 없이 다가서면 된다. 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 사람을 바꾸려고 하니 당연히 아무것도 되지 않고 분에 못 이겨서 화가 난다. 모든 것은 주어진 것이고 내가 할 일은 나에게 보다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과정일 뿐이다는 다짐을 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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