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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Aug 26. 2022

직장 상사의 예의 없음에 대처하는 법

나의 직장 험상 높은 자리에 올라 간 사람들은 몇 년 안에 굉장히 거만해진다. 이 거만하다는 것이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내세우고 우쭐해한다는 뜻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부하직원들의 인격이나 감정을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만방자해진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당초 잘난 부분이 있어서 진급을 했으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있을 터인데, 어느 정도 안정된 권력구조에 오래 머물게 되면 당연히 타인에 대한, 그것도 특히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게 그동안 가식이었든, 배려였든, 내가 최고 권력자가 된 마당에 굳이 피곤한 가면을 쓰고 싶은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피라미들은 종종 상처를 받는다. 명백한 폭언이나 인격모독과 같은 발언들에 의해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집무실에서 대놓고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의해서 물리적인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상처는 어떤 말이나 행동보다도 나를 대하는 그 사람의 자세에 있다. 마주 보고 있는 부하 직원을 전혀 사람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 그럴 때는 정말 회사고 월급이고 그냥 다 포기하고, 한 마디 한 마디 타골 장인으로 빙의해서 그 사람의 잘못된 행동들을 하나하나 발라내어 뼈를 때리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 생각으로만 그렇게 할 뿐 실제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했다.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낮고 구석진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오늘은 그 방법에 대해서 몇 가지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 브런치의 글들을 대부분 그러하듯 이것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전혀 없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라고 쓰는 글도 아니고, 그저 내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좀 더 차분하게 만들고자 하는 글이다.

 

1. 우리 모두는 분에 못 이겨 산다.


사람은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일종의 습관을 갖게 된다. 마음도 마찬가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나 타인을 이해하는 폭도 결국은 그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생활환경, 그리고 마음이 작동하는 습관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성격은 늘 선호하는 가치를 만들어 내고, 그 가치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에 분노의 원인이 된다. 어떤 사람들은 욕심이 지나치게 커서 그 욕심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분노가 훨씬 큰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화를 내게 하는 이유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높은 자리의 사람이 수시로 화를 낸다면, 그 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부하 직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내부의 실현 불가능한 욕심인 셈이다.


2. 왜 나인가?


사람의 행동은 누군가를 향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일종의 유도탄과 같은 것이어서, 그저 그 상황에서 제일 만만하고 가까운 사람에게 자동으로 모여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늘 나 같은 피라미들은 화를 입는다. 이건 마치 순간적으로 화가 난 사람이 손에 잡히는 만만한 물건을 쥐고 던지는 것과 같다.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난 리모컨이 억울해하는 것과 같다. 리모컨이 잘못한 것이 아니다. 직장 상사가 화를 내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나의 잘못이 아니며, 매사 모든 것을 본인 위주로 사고하는 인간에 대한 좁은 이해와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의 피해자일 뿐 화의 원인이 아니다. 예의 없는 행동은 그가 한 것이고, 예의가 없는 것도 그이다. 그러니 나를 자책하거나 나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3. 인과관계로 바라보라


화가 나는 원리에 주목하게 되면, 좀 더 이성적인 성찰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뭘 잘못했자라는 자책과, 화의 직격탄을 맞고 난 후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왜 그가 화가 났을까를 분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 그는 그날 회사의 중역들이 모이는 중요한 회의에 초대받지 못하였다. 그리고 당초 회의 시간보다 하루 전에 나를 불렀으나, 내가 다른 일정이 있어서 그에 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분석한 자료는 지금까지의 업무가 많이 부실했다는 내용 위주였고, 본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몇 년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 투성이었다. 당장 중요한 회의에 초대받지 못한 '자리의 위태로움', 그리고 그 와중에 부하직원까지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 게다가 당장 눈앞이 급한데 성과는 없다는 내용의 보고까지. 그가 화를 내는 것도 이해가 된다.


4. 이해와 인정


이해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앞선 상황에서 그 사람이 화를 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적고, 불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직장 내에서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하면 그 순간에 화가 났을 것이다. 이것은 키가 2미터가 넘는 사람이 키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입장은 당위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의 입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그와 같은 성격과 상황, 기질을 고려한 것이다. 저런 성격으로 태어나, 저런 인생을 살고, 저런 자리에서, 저런 압박을 받으면 그럴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정은 다르다. 그 행동이 나의 기준에 비추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인정할 수는 없다.


5. 나에게도 공격권이 있다


직장 상사의 예의 없는 폭언과 행동에 대응하는 법은 무엇이 있을까. 앞의 4단계를 거치고 나면, 생각보다 명쾌한 해결책이 도출된다. 감정의 영역이 상당 부분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 의견을 낼 자유가 있다. 험담과 비난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의견과 험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의견은 객관적 사실에 기반하여 내가 느낀 감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지나치게 포장하거나, 내가 느낀 감정을 일반화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험담이나 비난에 가깝다. 그러니 철저하게 사실과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나의 의견이자 나의 생각이므로, 누구든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이 쌓여서 그의 평판은 나빠질 것이다.

 

6. 하지만 내가 평온하려면


평판을 나쁘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조직을 위해서도 조직문화를 해치는 상황을 묵시하는 것은 전혀 이롭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의 행동이 나를 향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애초에 나는 상처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한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그리고 그 정신병원에서 한 환자를 보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패악을 부렸고, 특히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를 향해서 미친듯한 분노와 공격성을 드러내었다.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병원을 벗어나면서 나는 조금 흥분은 되었지만, 특별한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는 그저 미친 사람이었고, 나는 그저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7. 우리 모두는 미쳐있다.


정신병자의 예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정상인의 탈을 쓰고 살아가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는 모두 어느 정도의 비정상적인 심리를 가지고 산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그 심리적 결핍이 자극되면 나도 제어하지 못하는 습관적 발작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미친 사람들에 의해서 놀랄 만한 상황을 겪었다면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에 명심), 내가 할 일은 나 역시 미쳐버리는 순간이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분에 못 이겨서 미치는 순간이 있고, 내가 할 일은 나를 잘 다스리는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위대한 여정을 떠난다는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8. 나는 내가 소유한 회사다.


회사의 비유를 이어가면, 나라는 개인도 하나의 회사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나다.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나조차도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다. 나는 내 기분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내 감정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의 기분은 매일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잡쳐지고 있는데, 내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틀렸다고 할 수가 없다. 옆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나의 기분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의 나는 매우 기분이 좋을 예정이다. 내일도 모레도. 어떤 상사를 만나도. 어떤 회사를 다녀도. 어떤 인생을 살아도.


9. 하지 못한 말


마지막으로 그 상사에게 짧은 편지를 남기고 싶다. 직장에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쓰는 편지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저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돈을 위해서  사람다움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평등한 인간으로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계약을 맺고 스스로 동의한 규칙에 따라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도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행에 동의한 바가 없습니다. 제가 참는 것은 그래야 돈을 계속 벌 수 있어서가 아니라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평온한 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저의 의를 기꺼이 누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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