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에서 꼰대를 나누는 기준은 딱 하나다. 물어보지 않은 것을 말하는가?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만큼은 누가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려고 노력한다. (물론 가족과 친구들처럼 가까운 사이는 제외) 물어보지 않은 것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가 꼰대는 아니지만, 적어도 물어보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으면 꼰대가 되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은 나에게 유리한 전략이다. 어떤 사람들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을 접해보면 이게 그렇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 눈앞에 업무 처리가 서툴러서 허둥지둥 거리는 부하직원이 있다. 내가 간단한 조언 하나를 해주면 이 친구의 업무 성과도 올라가고 나 역시 편해질 것 같다. 게다가 이것은 정말 객관적인 업무적 조언이기에 라떼는 말이야와 같은 조언과는 결이 다른 조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부하 직원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물어보기 전에는 나는 절대 조언을 하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 요령을 찾아가는 과정이 훗날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진 업무 요령이 이 친구에게 장기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외모에 대해서 칭찬하거나, 입은 옷에 대해서 칭찬하는 것도 해당된다. 좋은 의미로 칭찬을 건네는 것이 어떻게 꼰대로 여겨질 수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칭찬이나 비난이나 결국 나의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결국 타인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행동일 뿐이다. 그 사람이 그날 입은 옷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거나, 혹은 외모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는 되도록 외모나 패션에 대해서 먼저 언급을 하지 않는 편이다. 만약 물어본다고 해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뉘앙스의 표현을 하고, 절대 솔직한 평가를 내리지도 않으려고 한다.
물어본 것을 말한다는 것에는 그 사람의 동의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내 의견을 말해도 좋다는 상대방의 동의가 선행된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내용을 말한다고 해도 그걸 듣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나의 가치관,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된다. 소설의 첫 문장에 이 이야기는 실제를 기반으로 쓴 내용입니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해도, 소설이기에 모든 내용은 허구가 되는 것처럼, 이건 그냥 내 생각일 뿐 참고만 하라는 내용으로 말을 한다고 해도 상대방이 물어본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강요에 불과하다.
상대방이 물어봤다는 것은 듣기를 동의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단순히 허락의 의미를 넘어선 뭔가가 있다. 바로 듣는 것이 본인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뒤에서 내가 하는 말은 그것을 그대로 듣든, 혹은 걸러서 듣든, 혹은 반대로 꼬아서 듣든 간에 상대방에게 도움이 된다. 반대로 물어보지 않은 말은 아무리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그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내 기준에서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넘겨짚은 것일 뿐,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말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넢겨짚어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행위일 뿐이다.
물론, 당연히 높은 확률로 나의 넘겨짚음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그러니까 80% 이상은 나의 조언이 혹은 표현이 상대방에게 좋은 의미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20%의 내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좀 더 크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물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내 기준으로 좋은 의도에서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작은 확률로 그날의 그 기분의 그 환경의 사람에게 매우 불쾌한 언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오래 같이 일한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는 무의미해지긴 한다. 서로를 이미 너무 잘 알아서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상호 간의 적정한 선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동의한 바에 따라 대우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실제 살아가면서 매번 사소한 일들마다 일일이 계약서 쓰듯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그 동의의 표시를 질문이라는 행위로 갈음하는 셈이다. 물어보셨다면, 그것은 궁금하다는 뜻이고, 거기에는 본인에게 유리한 정보를 얻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개인적인 경험을 전제로 필요한 수준의 의견을 건네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가 좀 피곤한 사람일 수는 있다. 칭찬 한 마디에 인색하고, 쌀쌀맞고, 개인주의적이고, 가끔은 좀 이기적으로도 보일 수 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기준들을 절묘하게 넘나들며 소위 인싸 같은 기질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그런 재주는 없다. 조금 개인주의적이고 조용한 사람일지언정 누군가에게 무례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물론 스스로가 조금 근질근질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눌러서 읽는 분들이라면, 나의 생각을 글로 읽는 것에 대한 동의를 마친 분들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