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에서 느끼는 경향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임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젊은 신입사원들을 많이 뽑지 않은 관계로 이러한 경향은 젊은 세대의 출현과 크게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니 다른 관점에서 이런 문제를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산업 자체의 몰락이고, 또 하나는 노동 가치의 몰락이다. 우리 회사는 두 가지의 몰락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으니 그런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임원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회사가 한정된 자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2%가 채 안 되는 인력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제공함으로써 나머지 98%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는 매우 성공적인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임원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삶과 인생을 갈아 넣었으니 말이다. 만년 부장이라는 말은 그 당시의 상황에서 일종의 패배자와 동일한 단어처럼 여겨졌다. 대기업은 98%의 사람들을 실패한 사람으로 만들면서도 성공적으로 직원들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임원이 제공받는 급여가 일반적인 임직원의 수준보다 월등하게 높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평생 임원이 되지 못하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차이가 있어야, 98%의 사람들이 갈구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격차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것이다. 바로 노동의 몰락과, 산업의 몰락이다. 결과적으로 임원이 되었을 때의 혜택이 더 이상 나머지 98%의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98%의 사람들을 패배자로 만드는 현재의 동기부여 방식에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은 점점 줄어드는 자원과 98%의 강력한 요구 앞에서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첫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노동의 몰락이다. 노동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산업 자체가 몰락하는 경우에도 해당 산업의 부가가치 감소가 노동의 몰락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산 가치의 상승과 자본 자체가 재생산하는 부가가치에 비해서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회사에서 제일 일 못하고 승진도 못하는 만년 대리가 알고 보니 부동산 여러 채를 거느린 부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만화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이 친구는 임원이 되기 위해서 회사를 다니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접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자산 가격의 상승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절망감마저 든다.
이런 자산 가격의 상승에는 최근의 통화정책도 한몫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한정된 재화에 대한 경쟁의 심화가 자산 가격의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모든 사람들의 취향까지도 획일화되면서 취향의 영역에서도 정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지역의 같은 유형의 같은 평형의 같은 아파트를 찾으니, 특정 자산에 대한 경쟁이 증가하고 자산의 가격도 상승하는 것이다. 이런 경쟁은 인구가 수도권에 밀집되어 거주하는 이상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고,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 자산 가격의 상승은 직접적으로 노동 가치를 하락시키고,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투자심리를 자극해 노동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산업의 몰락이다. 코인 거래 플랫폼을 운영하는 두나무라는 기업의 영업이익률이 88%라고 한다. 기존 제조업에서는 10%를 넘기 힘든 영업이익률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두나무는 이를 통해 작년 한 해 약 3.2조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산업 간의 부가가치 격차가 앞으로 얼마나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주요한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우수 인력들은 점점 더 부가가치가 큰 산업으로 이동할 것이고, 안 그래도 사양산업이라고 불리는 산업들은 이런 인력의 이탈로 인해서 점점 경쟁력을 잃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산업 간 임금격차도 당연히 현재보다 더 크게 벌어지고, 일부 산업의 경우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기존과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이전과 같이 임원이라는 장밋빛 미래로 직원들과 거래를 하고자 하면, 훨씬 더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의 임원이 받는 급여를 대폭 상승시켜, 급여 만으로도 자산 가격의 상승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안이다. 사양산업에서 그런 부담을 안고 임원의 처우를 대폭 상승하기에는 회사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가, 심지어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문화에서는 단순히 임원이라서 급여를 많이 가져간다는 것에 조직의 공감대를 얻기가 힘들다. 섣불리 시도할 경우 사회적 비난에 처할 수도 있다. 되려 그동안 2%의 임원에게 주어진 일방적인 혜택에 대해 98%의 임직원들이 형평성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양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사정은 복잡하다. 장기적으로 이익은 줄어들고 우수 인력의 이탈이 우려된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이 마땅치 않다. 2% 임원의 처우 개선을 통한 98%의 동기부여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머지 98%의 처우를 직접 개선하기에는 재정적으로 위험 부담이 크다. 그리고 우수 인력들은 이를 너무 잘 안다. 임원이 되는 것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당장 처우 개선은 힘들고, 차라리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기업이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큰 보상을 제공해주는 회사를 선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우수 인력의 이탈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98%의 임직원들은 저마다 자신이 우수 인력이라는 생각으로 회사에 처우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우리 회사가 대응하는 방식과, 내가 생각하는 대응 방식에 대해서 각각 기술해보고자 한다. 먼저 우리 회사가 대응하는 방식이다. 우선 사람을 줄였다. 아무리 사양산업이라고 하더라도 그 산업 자체가 필요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산성 혁신과, 시스템 자동화로 파이의 크기보다 사람을 더 적게 줄이게 되면 상대적으로 현재의 급여, 혹은 그 이상의 급여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회사의 대응 방식은 크게 인력 감소와 혁신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사실 우리 회사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양산업에 있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인력 감소는 사실 신입사원의 미채용을 의미한다. 기존 인력을 줄이기엔 노동 관련 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응 방식은 그러나 안 그래도 어려운 경영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신입사원 유입이 없어지면 기업의 경쟁력은 점점 더 약화되기 때문이다. 우선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라지고, 기존 인력들은 매너리즘에 빠져서 업무 혁신을 달성하기가 힘들다.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선배로서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일이 없어지고 전반적인 조직문화가 정체된다. 십여 년을 넘게 같이 일한 사람들끼리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에 반해서 경영진들은 혁신에 대한 갈망이 점점 늘어난다.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받는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점점 더 강압적으로 혁신을 강요하는 무리수를 던지게 된다. 안 그래도 임기 내 성과를 강요하는 문화에서 이런 무리수는 조직문화를 잔뜩 얼어붙게 한다.
이는 조직 내 스트레스를 크게 증가시키고 직원들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우리 회사에는 최근 들어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분들이 몇 달에 한 번씩 나타나고 있다. 이들의 선택이 회사의 조직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아예 미치지 않았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직원들은 혁신을 적용하기보다는, 경영진 강요에 따른 혁신에 대해 반발하고, 그들이 받는 높은 급여에 대해서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또한 최근의 코로나 환경에서 이어진 단기적인 영업 성과를 직원들과 나누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대응 방식은 이 글의 제목에 있다. 신입사원 채용을 유지하는 대신에 임원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상명하복식의 소통이 종결되고 수평적인 소통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빛을 볼 수 있다. 혁신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이지 결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신규 인력 유입을 통해서 기업의 조직문화를 보다 활력 있게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임원 중심의 조직 구성에서 벗어나서 훨씬 더 유연한 조직 구성을 가져갈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애자일한 조직 구성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임원이 주요한 조직 구성의 중심이 되는 문화에서는 애자일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임원을 먼저 놓고 자리를 만드는 것이 일상이지 않은가.
실제 임원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그들이 과거 회사에 크게 기여한 것은 알겠으나, 현재 그들이 과연 급여만큼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단지 임원이 참석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임원이 결재해야 하는 안건에 결재하기 위해, 임원이 검토해야 하는 자료를 검토하기 위해, 임원이 발표해야 하는 자료를 발표하기 위해, 임원급이 팀장을 해야하는 자리에 임원을 앉히기 위해, 그러니까 임원이 있어야 하기 위해 임원이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도처에 널린 혁신에 대해서 그들의 이해를 구하는 절차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모든 임원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 동기부여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과거처럼 임원이 되는 것이 곧 성공이고, 성공이 곧 동기가 되는 방식은 효용이 떨어진다. 직장인들의 동기가 꼭 기업에서의 승진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 대한 주도적 권한과 그에 대한 인정만으로도 큰 동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임원 중심의 부서에서 애자일한 조직으로의 권한 이양은 직원들의 주인의식의 고취를 불러와 강한 동기부여가 된다. 평생을 부장으로 일했지만, 내가 맡은 일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부장. 아니 회사에 이만큼 든든한 자원이 어디 있는가. 그런 사람들이 인정받으면서 일할 수 있으면 그것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는 것이다.
조직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일사불란하기가 군대와 같은 조직이 훌륭한 조직이라고 평가받던 시대는 진작에 사라졌다고 믿었는데, 아직도 우리의 기업 일선에는 이런 것이 좋은 기업이고, 좋은 조직문화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기업의 이익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조금 질서 없고 산만하더라도 중요한 일만 놓치지 않으면, 그 외에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조직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부가가치가 잘 나오는 산업이든, 사양 산업이든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사회가 더 적은 인구로 지금과 같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다. 권위적인 임원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임원 직급을 폐지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