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자꾸 강요당하는 코스가 있다. 남산과 북악이 그것이다. 이 코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기존에 작성된 글에 나와있지만, 정리하자면 어느 정도 통일된 기준으로 나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평지에서는 체중과 무관하게 파워가 센 사람이 빠르지만, 남산이나 북악 정도의 단거리 오르막에서는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과 적게 나가는 사람끼리도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실력을 비교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런 이유로 처음 자전거를 타게 되면 남산과 북악은 하나의 목표가 된다. 남산을 몇 분에 오르느냐에 따라서 나를 비롯해 주변의 라이더들의 자전거 실력을 대번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남산의 경우 6분대, 북악의 경우는 9분대가 1차적인 목표가 된다. 문제는 그다음. 목표를 달성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남산 6분대를 달성한 사람은 5분대가, 5분대를 달성한 사람은 4분대가 마음의 숙제처럼 남는 셈이다. 얼마 전에는 한 동호인이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남산 3분대를 달성했는데, 기존에 가장 빠른 기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음에도 남산 3분대가 늘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나의 경우는 재작년에 한창 자전거를 열심히 탈 때 세운 남산 5분대, 북악 8분대가 가장 최근의 목표였다. 브런치에도 글을 한 번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목표 달성에 대한 내용을 글로 올린 적은 없는 것 같다. 결과만 이야기하면 작년에 두 오르막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다. 남산은 5분 50초, 북악은 8분 35초의 기록이었다. 나처럼 마른 사람들은 근력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짧은 오르막일수록 불리해진다. 순간적인 파워를 이용해서 승부하는 비중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산보다는 약간 더 거리가 긴 북악의 상대적인 기록이 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에 도전한다는 것은 나에게 굉장한 활력을 주었다. 이것을 재작년의 도전에서 느꼈다. 첫째는 긍정적인 사고를 체화하는 것이다. 더 나아진다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모든 사고의 전제에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는 뜻이다. 그러니 못한다, 부족하다, 떨어진다와 같은 부정적 사고보다는 할 수 있다, 된다, 충분하다, 가능하다와 같은 긍정적인 사고가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이를 통해 일상생활에서도 힘든 상황을 마주 하였을 때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사고가 전환되었다. 삶에 에너지가 넘치고 여유가 생긴 셈이다.
두 번째는 모든 초점이 나로 향했다는 것이다. 기록 경쟁에서는 타인과의 비교가 무의미하다. 내가 세운 기준과 그 기준을 달성하는 것이 우선시된다. 그러니 주변 사람의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여 시기와 질투를 반복하는 나쁜 습관을 떨쳐낼 수 있었다. 타인이야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나의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하게 되었고, 심지어 타인의 성공을 보면 질투보다 그 사람이 그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 흘린 땀방울에 대해 공감하고 존중하게 됐다. 그러니 타인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마지막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욕구의 노예로 살았다. 이는 늦은 밤 떠오르는 라면 한 그릇의 유혹에 휘둘리는 삶과 같다. 그 유혹들은 사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아니라, 그저 무의식 중에 습관처럼 굳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목표를 세움으로써 나는 여러 가지 유혹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욕구가 나에게 유리한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고, 유리하지 않은 욕구는 참기보다 내가 스스로 포기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욕구를 따르기보다, 내가 나의 이익을 위해 욕구를 평가하고 선택하지 않는 주도적이면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늦은 밤 라면을 힘들게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삶을 대하는 전혀 다른 태도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런 목표가 있던 자전거 인생도, 카본 휠의 열변형과 함께 허망하게도 급속도로 식어버렸다. 한 번 공백이 생기니까 자전거 타기의 동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고 체중은 다시 불어나고,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던 찰나 2년 만에 시행한 건강검진을 계기로 다시 자전거 타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올 5월. 생각해보니 올해 말 출산을 하게 되면 운동에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올해 뭔가 의미 있는 큰 도전을 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북악 7분대. 재작년의 기록보다도 월등하게 빨라야지만 가능한 기록이라 걱정은 앞서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조금씩 몸을 올리는 중이다.
체중도 다시 많이 줄였고, 장마철 기간 동안 지속주 위주로 집에서 즈위프트도 많이 탔다. 체감하는 몸상태는 재작년의 90% 수준. 10월 말이나 11월 초의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해서 9월부터는 10분 파워 향상을 목표로 워크아웃을 돌릴 계획이다. 한 번 겪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금방 또 적응해서 건강한 절제의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런 목표와 함께 하는 삶은 꼭 자전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자전거의 경우 시간이라는 숫자로 목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꼭 숫자가 아니더라도 삶의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서 노력하는 삶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세웠던 목표들은 사실 대부분 내가 원해서 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가, 부모님이, 혹은 주변에서 정해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설령 내가 좋아 보여서 세운 목표였을지라도 그것이 정말 내가 좋아서 세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나의 의지로 내 삶을 깎고 다듬어 가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을 느낀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떤 목표를 가질 것인가. 생각만 해도 즐겁고 기분이 좋다. 내가 주인이 되어 선택하는 삶. 자전거는 나에게 철학을 연주하는 악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