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Oct 21. 2022

성수기 인생

차 사려고 알아보니 3년을 기다리는 차도 있다고 한다. 살 건 아니었지만 참으로 놀랍다. 아파트 분양도 아니고 차를 무슨 3년씩이나 기다린단 말인가. 못 가진다고 생각하면 더 갖고 싶은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 3년 후 받을 차를 예약하는 사람들도 대단하다. 물론 대기만 걸어둔 허수가 많아 실제로는 더 빨리 받을 거라는 기대를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나중에 괜히 더 차 사기 힘들어질까 봐 미리 걸어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뭐가 되었든 나는 한 치 앞도 가늠이 안 되는 인생에서 차에 3년을 태운다니.


사실 최근의 차량 대기는 공급과 수요에서 모두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반도체 이슈나 원자재 이슈로 차량 공급은 지연되고, 환율 문제로 인해서 그마저 생산되는 분량이 해외로 많이 빠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수요는 또 얼마나 많은가. 코로나 시기 풀린 유동성과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어느 정도 자산의 증가를 경험한 사람들이 차를 바꾸려는 수요도 있을 것이고, 대출을 받아 집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캐시 플로우가 확정된 이후 생각보다 여유가 있어 차를 구입하려고 하는 수요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급과 수요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지만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선호의 문제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차들이 다 고만고만한 것이다. 우선적으로는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대량생산 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의 폭이 좁기도 하고, 한국은 특히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라 더더욱 선택의 폭이 적다. 그런 배경에서 사람들도 남들과 다른 선택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중고 가격 방어라는 명목 등으로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무난한 제품을 선택하는 특성이 있다. 소위 말하는 인기 차종과 인기 옵션이 그것이다. 안 그래도 부족한 공급에 넘치는 수요인데 선호까지 일치하니까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성수기 인생이다. 골프를 치고 캠핑을 가고 나이키 신발을 사고, 아파트를 그 난리 쳐서 사고하는 것을 보면 늘 어딜 가든 성수기다. 인기 많은 식당은 몇 시간 대기가 예삿일이고 국민이라는 글자가 붙은 제품은 늘 대란이다. 그놈의 국룰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하나 하려고 하면  사람 많고 정신없는 곳에 꾸역꾸역 가서 이게 휴가인지 고역인지 모를 시간을 보내는 성수기 해수욕장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너무도 흡사하기에 우리는 늘 한정된 재화를 추구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모두가 비슷한 생각과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사고가 그 기저에 있다.


맥도날드 세트를 둘이서 각각 시켜도 감자튀김은 꼭 엎어서 같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으로 인해 우리는 늘 어느 곳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캠핑이 유행이면 모두가 캠핑을 하고, 골프가 유행이면 모두가 골프를 한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왠지 그러지 않으면 남과 동떨어져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좋은 것은 늘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가 넘친다는 것이지만, 반대로 인생은 늘 성수기 같아서 불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비극인지를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교육에서도 이런 현상은 심각하다. 모두가 몇 개의 인기 대학교를 가야 하고, 몇 개의 유명한 회사에 취업해야 한다. 아니 애초에 모두가 대학을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참으로 신기하다. 취업은 왜 꼭 해야 하는가. 세상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100명의 학생 들 중에서 5명이나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에 100명의 학생과 200명의 학부모가 덤벼 들어서 각자가 가진 자원과 시간을 말 그대로 쏟아붓고 있다. 덕분에 사회적 자원은 실시간으로 낭비되고, 젊음은 그 활력을 잃고 패배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차 하나 사려고 알아보다가 또 이상한 데로 이야기가 샌 것 같은데 요즘 브런치를 너무 뜸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마지막 이야기를 이어가면,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이어령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뛰면 1등이 한 명뿐이지만, 360도로 뛰면 360명이 1등을 할 수 있어요.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온 국민이 빨리 행복해지는 길이에요."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남들의 시선에서 보다 자유로워져서 각자의 선호를 마음껏 충족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런 마음으로 시트 옵션은 모두의 만류를 뒤로하고 밝은 웜 그레이 컬러를 선택해본다. 끗.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은 어쩌다 변소가 되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