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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Sep 12. 2020

동료평가

인재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회사에서 동료평가를 한다고 한다. 순간 또 스트레스 인덱스가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의식이 무의식을 따라가는 느낌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하나씩 곰곰이 분석해 보았다.

대체로 나의 무의식은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녀석이라서, 뭔가 거슬리는 게 생기면 급격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여기까지는 거의 1초도 안 걸리는 것 같다. 그리고 나면, 나의 의식 뒤늦게 허겁지겁 무엇이 문제인지 찾기 시작한다. 마치 세 살짜리 아이가 울어대는데 이유가 뭔지 허둥대며 찾아대는 꼴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무의식님께서 불편해하시는 포인트를 몇 개 찾아보니 대체로 아래와 같았다.

1. 동료평가의 기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인재상이라는 단어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만들어 둔 다음, 그 기준으로 구성원들을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이 구분이 없이 동료 평가를 실시하게 되면, 타인의 고유한 인격에 대한 폭력적 줄 세우기가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하자. 이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투자도 하지 않고, 은행에 매달 돈을 모으는 삶을 살고 있다. 이 사람이 옳으냐 그르냐는 기업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혁신적이고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 사람에게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기업은 이 사람에게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서로 상충되는 가치를 마주할 때 어떠한 가치가 우선한다고 지침을 줄 수 있다. 비록 개인적인 성향은 보수적일지라도 업무를 수행하다가 안정성과 새로운 도전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도전이 더 우선순위를 가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람의 개인적 인격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우선시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실에서, 기업은 특정한 인재상을 그려놓고, 개인이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요구한다. 이는 어떤 사람의 고유한 성향을 기업이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독재이며, 또한 어떤 성향이 더 옳은지에 대해서도 자본주의적 논리로 규정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이다. 기업은 혁신적인 인재가 되십시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다만, 가치가 상충하는 순간에는 도전을 선택하셔도 좋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 스스로에게도 이득이다. 사람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고,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여러 부작용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리적인 관점에서도 이익이 없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그런 척 흉내만 낼 것이다. 그런데 이를 더 확대시켜 구성원들이 회사가 정한 인재상에 맞게 행동하는 지를 평가시키는 경우라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기업은 그저, 그 사람이 회사가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는지, 그 과정에서 회사가 정한 규칙을 준수하는 지를 평가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재상을 보자.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역량을 강화하고 효율적이며 생산적인 업무 방식을 지향하며 창의적 사고와 한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도전 의식을 지닌 미래 지향적인 인재.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타인을 배려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전체를 생각하고 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며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자기 주도적으로 창의적 감성과 상상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왜 회사를 다닐까.



2. 동료평가의 효과


어떤 게으른 사람이 있다고 하자. 물론 나의 이야기다. 게으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일을 적게 하고, 그래서 성과를 내지 못해서, 더 적은 월급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다고 치자. 반면에 만약 게으른 사람이 일을 적게 하지만 더 좋은 성과를 낸다고 하자. 그러면 이 사람은 더 많은 월급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기업에서의 평가는 어쨌든 성과를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어떤 근면 성실한 동료가 보기에는 나의 근무 방식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치자. 그리고 이 기업의 인재상에는 근면성실이라는 항목이 있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당연히 나에게 아주 게으르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것이다. 그러면, 그 결과를 받아 든 나는 '아 나는 참 게으르구나, 그러니 뛰어난 동료들에 비해서 모자란 부분을 개선시켜 더 부지런한 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라고 생각할... 리가 없.


모든 성격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고, 게으르고 가끔 필 받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근면 성실한 것보다는 자유분방한 업무 방식을 통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성과 측면에서 남들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업에는 창의라는 인재상이 있지 않은가. 내가 게으르다고? 어? 어떤 멍멍이가 나를 멍멍이 취급하고 있네? 여긴 멍멍이가 많은 조직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3. 동료평가의  최후

1번과 2번을 조합하면 결과는 더 처참하다. 스스로 단점으로 생각하지 않는, 가끔은 자랑스러운 개인들의 성향을 줄 세우고, 이를 서로 평가하게 만들어서 동료평가 결과를 수행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할 것이 없다. 그저 개인에게 피드백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리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동료평가는 매년 반복된다.


이렇게 몇 번을 돌고 나면 조직은 멍멍이가 가득한 곳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멍멍이로 여기게 만드는 것 말고는 동료평가의 장점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치열한 경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사기업 문화에서 이런 동료평가는 결국 노예끼리 서로 밀고시키는 잔인한 개싸움에 비할 바가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이럴 거면 진짜 욕 많이 하는 사람들 하루에 몇 번씩 욕하는지 적어내게 해서 한 달에 열 번 이상 욕하면 잘리는 시스템이라도 운영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아무튼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무의식은 기분이 몹시 더러워서 또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말았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그리고 바뀌어야 할 이유도 없다. 각자 다른 성격을 바탕으로 노력하고 성과를 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설령 바꿔도 내가 바꾸니까, 회사 따위가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을 잔뜩 쓰고 보니, 결국 나는 내가 봐도 불평불만이 많고, 성격이 다혈질인 데다가, 극단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 같다. 이런 내 성격을 동료들이 알면 안 될 텐데. 아 이게 동료평가의 효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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