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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Sep 12. 2020

생각의 습관

패닉바잉을 바라보며

마음에도 습관이라는 게 있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한 번 습관이 들면 쉽게 바꾸기가 어렵다. 관성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사람의 마음에도 관성이 작용한다. 마음의 습관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습관은 생각의 습관이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습관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옳고 그름에 대한 자기 성찰의 기회도 쉽게 가질 수 없다. 그래서 시대가 변해도 세상이 쉽게 안 바뀌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출퇴근하면 부자가 되던 시대는 갔다.


나는 이른바 80년대 고성장 시대를 경험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 혼자 직장에서 월급을 받아서 우리 가족 4명이 먹고사는데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대체로 다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누리고 있었기에 크게 누군가를 부러워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금리도 높아서 은행에 저축만 해도 돈이 금방 불어났다. 사업하다 망한 사람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던 시절, 좋은 대학교를 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막상 부모님의 바람에 따라 대학교에 들어가고 회사에 취업했지만 내 인생은 기대한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결혼하고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나는 금방 현실을 파악했다. 학벌과 직장은 나의 경제적 지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신용대출을 조금 더, 조금 싼 이자로 빌릴 수 있을 뿐이었다. 대신에 부모가 서울에 집이 몇 채가 있는가가 전부였다. 나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촌놈은 부모님의 피 같은 노후자금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주변을 둘러보는데, 생각 외의 방법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다양한 플랫폼의 등장으로, 기상천외한 일자리가 생겼다. 학벌, 직장과 무관하게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나 같은 월급쟁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돈이었다. 나는 비로소 학벌과 직장이 돈을 버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대가 됐음을 알게 됐다. 직업적 소명의식 따위는 1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들은 정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노동이 얼마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가?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부가가치를 발생시킨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부가가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고도성장 시기에는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이 필요했다. 특히 대기업 주도의 제조산업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가 그 어느 직업에 비해 월등했다. 그러니 당연히 급여 수준도 높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돈 잘 버는 기업들은 직원들의 역량이 조금 부족해도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되려 역량이 조금 떨어져도 성실하다면 그것으로도 인정받는 시대였다.

그런데 그런 고성장 시대는 이내 저물었고,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를 원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의 라이선스와 중국의 값싼 노동력 사이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은 점점 약화되었다. 인터넷과 IT 기술의 발달로 기존에 없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사회적으로 더 효용이 컸다. 자연스럽게 제조업 위주의 대기업 종사자들의 보상은 줄었고, 스타트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혹은 졸업을 앞둔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스타트업을 도전하는 사회적 유행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혁신적인 산업과 제조업 간의 차등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국가 주도의 성장 압박에 지친 사람들이 점차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문화적 여유를 누리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규모의 돈을 자기만족에 쓰기 시작했다. 문화적인 Contents를 만들어 내는 것이 큰 부가가치가 되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심지어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등장은 이러한 흐름을 폭발시켰다. 이제는 더 이상 대형 기획사 소속이 아니더라도, 공중파 채널에 나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회가 원하는 부가가치의 중심이 이동했고, 그 부가가치를 효율적으로 환전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런 사회가 오리라는 것은 사실 십수 년 전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예상하는 것과, 실제 그것을 위해서 내가 쌓아 온 것을 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80년대 고도의 성장기에도 마찬가지였다. 사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에는 자영업의 성공 확률도 높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시기를 거치면서 자본가가 되기보다는 대기업의 직원이 되기를 선망했다. 나는 이것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생각의 습관과 자본주의가 만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자본주의가 주는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업의 직원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회사원이 되고 나서야, 내가 처한 경제적 지위와 자본주의의 원리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뭔가를 시작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다. 이미 경제 활동에 대해서 굳어진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매달 나오는 월급이 주는 중독성에 이미 길들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으로 몇억을 버는 사람을 보면서도, 여전히 회사 일을 잘하는 것이 앞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길인 거 같다. AI가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사무직을 다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당장 다음 승진이 더 중요하다. 여전히 나는 과거의 습관으로 일하고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영화 백 투 더퓨처를 다시 보았다. 특히 1990년에 상영된 2편은 2015년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래보다 훨씬 진보된 기술로 가득한 사회를 상상해 두었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렇게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카드 결제만 봐도 그렇다. 신용카드가 나온 지 수 십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현금을 쓴다. 처음 신용카드가 나왔을 때는 조만간 현금 거래가 없어질 것이라 모두가 예상했을 것이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의 습관은 사회가 변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각종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세상은 한순간에 변화할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세상과 줄다리기하듯 자신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이를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곳 보다 내 삶을 보자.


요즘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뜨겁다. 코로나 이후에 세상이 변한다고 하니, 각광받을 것 같은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민국의 모든 유동성이 투입된 것 같다. 지금 이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면 영원히 부자가 되지 못할 것 같은 패닉 현상도 벌어지는 것 같다. 덩달아 나도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 순식간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고 투자하는 사람들이 생각이 정작 쉽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변화를 천천히 목도하면서 계획에 따라 움직여도 결코 늦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삶이 조금씩 변할 때, 그 변화가 향하는 곳을 그저 조금 먼저 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1910년대 미국에서 자동차가 엄청난 혁신의 중심이었을 때, 미국에는 자동차 회사가 수백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상위 십 개 기업들은 전부 살아남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는 고작 3개의 자동차 메이커가 돈을 번다. 1930년대 항공산업이나 1950년대 TV 산업도 마찬가지였다. 신기술 그 자체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신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이동한 부가가치가 돈을 버는 것이다. 요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루 종일 빠져 사는 유튜브를 보자. 바야흐로 지금은 유튜브 시대다. 이런 유튜브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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