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화에서 본 내용이다. 출처는 늘 그렇듯 정확하지 않다. 어떤 왕이 왕국의 모든 학자들을 불러놓고 명령을 내렸다. 이 세상의 지식을 모두 모으라고 했다. 학자들은 12권의 책에 빼곡히 세상의 모든 지식을 적어 두었다. 왕에게 이르니, 왕은 그 내용이 너무 많으니 다시 6권으로 줄이라고 했다. 학자들은 버릴 지식은 버리고, 합칠 지식은 합쳐 6권의 책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 왕은 다시 그것도 많으니 1권으로 줄이라고 했다. 한 장으로, 아니 더 나아가서 한 문장으로 줄이라고 했다. 그렇게 학자들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문장이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분명하지 않으나, 장자에 나오는 일화라는 설도 있고,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라는 설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프리드먼이 즐겨 말하는 free lunch와 연관 지어져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되었다. 이 일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오늘은 이에 빗대어 회사의 리더십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글을 써볼까 한다.
리더십도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을까
어떤 회사에서 리더십 설문을 한다. 구성원들에게 팀장이 리더로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는 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는 아주 많은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들은 리더십을 이루는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본다. 팀장은 나의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가? 팀장은 공평하게 업무를 배분하는가? 하나씩 일일이 답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앞서 말한 일화가 생각났다. 이런 질문들을 모두 줄이고 줄여, 단 한 문장으로 리더십을 평가할 수는 없을까. 그러자 똑같이 한 문장이 덜컥 머릿속에서 튀어나왔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리더인가?"
기업들, 특히 대기업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대부분 소통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이 모인 곳임에도 늘 실패가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다.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제대로 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와 같다. 어떤 이유에서든 제대로 된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면, 리더는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리더라 하더라도 말이다.
소통의 부재에는 리더의 아집이 있다
의사소통의 부재는 대부분 부하 직원들이 사실보다는 리더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진다.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윗사람이 듣기 좋은 정보를 각색해서 제공하면서 점점 기업은 산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내 정치. 성과가 좋은 사람을 높이 평가하기보다는, 리더와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회사에서 주로 일어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조직문화다. 실수로 인해 보복을 받을 것이 두려워서 리더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되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 모두 리더에게 책임이 있다. 사내 정치가 되었든, 혹은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되었든, 모든 것은 리더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독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분 경험이 많고 자수성가했다고 믿는 리더 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하다.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거나, 정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그와 다른 부하직원의 의견은 오답이 된다.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직원들이나 실수를 하는 직원들은 이른바 정답을 모르는 무능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되면 부하직원들은 몇 번 의견을 개진하다가 점점 소통을 포기하게 되고, 그 뒤로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행동하게 된다. 또 실수를 하더라도 무능하다는 낙인이 찍히는 것이 두려워 이를 숨기게 된다.
리더는 정답보다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
정답에 집착하는 대부분의 리더들은 리더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본인이 리더가 되기 전까지의 역할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무자와 달리 리더는 정답을 내는 사람이 아니다. 리더들은 가치와 비전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하는 가치. 이 두 개가 리더의 몫이다. 그러면 정답은 구성원들이 각자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찾는 것이다. 이는 구성원들의 성과가 되고,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에게 동기부여로 돌아간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이 정답을 찾는 선순환의 아름다운 조직문화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지시하기보다 많이 들어야 한다. 구성원들의 어려움을 듣고 고충을 해결해주고, 필요한 경우 부서 간의 갈등을 조율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부하직원이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리더가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빠른 판단력과 정확한 문제해결력만 있으면 된다. 특히 요즘같이 DT니 혁신이니 하는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에서는 높은 사람이 곧 전문가이고 이 산업계의 최고 권위자가 된다. 리더의 특강이라는 단어도 종종 오간다. 리더의 과거 경험이 회사에서 어떤 권위가 되는 순간 그 기업은 발전 가능성을 잃게 된다.
성공한 리더일수록 부하직원을 못 믿는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리더는 왜 정답에 집착하는가? 돌고 돌아서 결국은 신뢰의 문제이다. 부하직원이 미덥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정답을 주입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부하직원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가만히 일하는 걸 보고 있는 것이 두렵고, 그래서 하나하나 간섭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부하직원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뜻은, 리더가 구성원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며, 부하직원이 더 뛰어날 수 있음을 늘 인지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어느 날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사내에 스카우트했다고 하자. 그리고 이 전문가가 나에 대해서 반대의견을 낸다면 이를 그저 오답으로 치부할 것인가?
물론 신뢰의 과정엔 험난한 가시밭길이 있다. 리더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도무지 믿을 직원이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리더들의 불평불만은 리더로서 하지 말아야 할 최악의 행동이다. 이 세상엔 완벽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조금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 리더란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조합해서 조직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임명된 사람이다. 부하직원을 불평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리더라는 역할 자체가 부하직원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리더를 보며 부하직원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요즘은 믿을 만한 리더가 없어."
또어느 날 갑자기 구성원을 믿기 시작한다고 해서 기업이 다 잘되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정착하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리더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 일회성으로 윽박지르듯 나에게 부족한 점이 뭐야 라고 물어보는 리더에게 정말 그 리더의 부족한 점을 말할 부하직원은 없다. 월급 받고 사는 이상 그 정도의 눈치는 모두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일부 구성원들은 리더의 신뢰를 악용해서 본인의 사리사욕만을 채울 수도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냐는 말처럼, 오랜 시간을 통해 정착된 문화는 그 일부의 무능한 직원을 덮을 정도로 큰 경쟁력이 된다.
기업의 위기는 작은 거짓에서 비롯된다
기업에서의 큰 손실은 대부분은 작은 거짓에서 비롯된다. 어떤 이유에서 그랬든 간에 거짓을 숨기고, 그 거짓이 시간이 지나면서 경영에서의 큰 위협이 되어서야 드러난다. 리더는 왜 이 거짓을 지금까지 숨겼는지 닦달하고, 조직은 경직된다. 그러나 리더가 간과하는 것은, 본인이 닦달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작은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성원들이 솔직한 소통을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리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성원들을 믿고 그들의 실수까지 진정성 있게 들어주는 리더가 있다면, 그 기업은 비록 순간 실패했을 지라도 언젠가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첫 째로는 리더가 부하직원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리더는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항상 인지하고, 부하직원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부하직원을 탓하기보다는 부하직원의 긍정적인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구성원들은 실수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지 않을 것이고, 매 순간 적극적으로 자신이 가진 좋은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그 순간 기업은 보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김프로는 여기까지 적고 엔터를 눌렀다. 회사의 리더십에 바라는 점이 있습니까?라는 리더십 설문조사에 대한 긴 답변이었다. 제출하기를 눌렀지만 화면은 멈췄고, 팝업 창 하나가 떴다. 300자 이하로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프로는 주춤했다. 길게 쓴 글을 모두 지우고 한 문장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