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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Sep 07. 2020

가식과 배려

꼬이고 꼬인 김프로

팀장님 입에 침은 바르셨습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놀랬던 것은 말과 속마음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정 반대로 달랐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새로 온 옆 팀의 팀장이 팀원들을 모아두고서는 본인은 근무시간이나 근태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뒤로 사사건건 근무시간과 근태로 직원들에게 눈치를 주었고, 뒤에서 모든 직원들의 근무 시간을 일일이 파악하고, 누가 늦게 오는지를 조사했다. 러면서 겉으로는 계속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사람의 행동으로 보면 누구보다 근무 시간과 근태에 예민한 사람이 맞다. 그런데 왜 굳이 모두에게 본인이 근무시간과 근태에 예민하지 않다고 공표를 한 걸까?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차라리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굳이 전혀 관여하지 않겠다고 해서 팀원들을 속이는 이유가 뭘까?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함정인가? 팀원들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인가? 그런 건가?

회사에서 이런 경우를 특히 많이 보았다. 돈이 많다고 스스로 자랑하는 사람 치고 정말 돈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반대로 돈이 없어서 죽겠다고 늘 징징거리는 사람들은 정작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부자였다. 바쁘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뒤에서 수다나 떨면서 노는 경우가 많았고, 오~ 김 프로 옷이 멋져!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뒤에서 그 옷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다.


말보다는 행동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하는 말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차라리 그 사람이 말하는 것과 반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훨씬 더 정확도가 높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속마음과 상반된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보게 되었다. 대체로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과 그 사람의 속마음과 일치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말에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그냥 내키는 대로 하면 된다. 나는 몸짱이 될 거야!라고 말하고선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행동에는 실제 노력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여 나의 육체적인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 행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니 속마음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행동이 그 사람의 진짜 의도를 좀 더 잘 보여준다는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왜 전혀 다른 말을 하는지는 이해가 안 되었다.

그걸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은 예물시계 덕분이었다. 오~ 자네 시계가 멋져! 하면서 누군가 뜬금없이 나의 시계를 언급했다. 그때 순간적으로 뭔가 스쳤다. 서랍 깊숙하게 처박아둔 예물시계가 아까워서 차고 다닌 지 한 달이 좀 넘은 시점이었다. 왜 갑자기 지금 시계 이야기를 하는 거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예물 시계입니다 허허 하고 넘어갔는데 그 뒤로 알듯 말 듯 한 느낌이 며칠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퍼즐이 맞아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말은 내용보다 주제와 타이밍이다.


논리는 대충 이렇다. 말의 내용이 어떻든 간에, 소리 내어 말을 하는 것도 일종의 행동이다. 입으로 소리 내어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내 육체적인 에너지를 쓰는 것이고 나의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다. 그러니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내용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바로 그 행동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왜 지금, 그 주제로, 말이라는 행동을 하는가. 제멋대로 포장할 수 있는 말의 내용보다는 숨겨진 말의 의도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 사람은 내 시계가 거슬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불편함이 이 시계에 대해서 말하게 만든 의도이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나에게 대놓고 왜 그런 (본인이 생각하기에 나같은 나부랭이에게 과분한) 고급 시계를 차고 왔는지 물어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불편한 마음, 그리고 그 불편함을 표현하고 싶은 의도, 하지만 사회적 체면이 환상적으로 콜라보를 이룬 결과가 바로 그다음의 표현이었다. 오~~ 자네 시계가 멋져! 하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멋지다!' 가 아니라 '시계'라는 대상인 것이다.


거슬릴수록 괜찮다고 말하게 되는 역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옆 부서의 팀장은 대뜸, 처음 부임해서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근무시간과 근태를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였다. 여기서도 포인트는 '신경 쓰지 않겠다'가 아니라 '근무 시간'과 '근태'라는 대상인 것이다. 왜 하필 첫 만남에서 그 두 주제를 꺼내었는가. 이미 그것에서 팀장이 근무시간과 근태를 가장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걸 어떻게 표현하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서 팀원들이 듣기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돈이 없다고 징징거리는 사람은 머릿속이 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돈을 원하는 것이다. 그러니 돈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는 돈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갖고 싶은 만큼 돈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것처럼 비치지 않는 선에서 늘 돈이 없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옷을 칭찬한 사람들도 사실은 옷이 거슬렸던 것이다. 왜 회사에 저런 옷을 입고 오지? 하는 불편함이 말이라는 행동을 이끌어 냈고, 다만 표현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숨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배려인 것을.


그렇게 생각하니 죄다 가식이었다. 사람들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교묘하게 말의 내용을 가지고 말하는 의도를 숨겼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가식과 거짓말에 속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그때 문득 예전 통신사 광고가 생각났다. "얘야, 우린 아무것도 필요 없다. 연속극은 옆집 가서 보면 된다." 티비가 필요하지만, 그래서 말은 하지만, 자식을 배려해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는 부모의 마음. 가식은 바라보기에 따라서 배려도 되었다. 갑자기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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