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와서 정신없이 집을 청소하다가 월패드를 건드렸는데 집 전체 전기가 일괄 소등되고 말았다. 다시 하나씩 불을 켜는데 유독 양쪽 화장실과 드레스룸, 팬트리, 발코니 등 거실과 방을 제외한 기타 공간의 전등이 여전히 먹통이었다. 경비실에 문의를 하니 아파트 자체적인 문제가 있어 해결하는데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약 10일 정도 걸렸는데, 그동안 앞서 말한 공간의 전등을 전혀 사용하지 못했다.
사실, 이게 10일 정도나 걸릴지도 몰랐고, 또 이렇게까지 불편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캠핑 가서 쓰던 무선 조명을 몇 개 연결해서 화장실에 두고 쓰면 될 터였고, 드레스룸이나 발코니는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쓰면 여차저차 생활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안일한 생각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불편해도 불편해도 너무 불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우선 가장 큰 불편함은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이었다. 매번 화장실 전등 스위치가 아니라 랜턴의 작은 스위치를 누르는 것이 불편했다. 게다가 항상 켜 두기엔 전기 소모가 많아서 켜고 꺼야 했는데 매번 끄는 걸 깜빡해서 조금 지나면 배터리가 방전되어 조명이 꺼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충전 케이블을 꽂아서 썼는데 이번엔 또 선이 길지 않아서 랜턴을 높은 곳에 두질 못해 조도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연히 환기팬도 작동을 하지 않았다.
드레스룸도 문제. 드레스룸이라 하면 옷을 입는 곳인데 휴대폰 손전등을 쓰면 한 손은 휴대폰을 쥐고 있어야 하니까 옷을 입거나 꺼내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급기야 며칠 지나서는 겨우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감으로 옷을 꺼내서 입는 게 편할 정도였다. 발코니도 마찬가지. 세탁기를 돌리거나 빨래를 널 때마다 조명이 없어 잘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식자재를 넣어두는 팬트리도 어두우니 불편하긴 마찬가지.
4,5일쯤 지나자 몸은 슬슬 적응을 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적응과 함께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고작 화장실과 드레스룸에 조명이 며칠 안 나오는 것에 이렇게 짜증이 나도 되나 싶을 정도. 사실 큰 일도 아닌데 매번 반복되는 사소한 불편이 사람을 정서적으로 이렇게까지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주말에 부모님이 올라오신다고 하니 이제 제발 어떻게든 전등만 켜주세요 하는 간절한 마음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과는 별개로 결국 해결은 나지 않았고, 부모님은 3일 내내 캄캄한 화장실과 함께 지내셨다. 전등이 다시 켜진 것은 월패드 청소 이후 10일이 지난 후였다. 화장실에 쨍한 LED 전등이 켜지는 것을 보니 세상에 그렇게 감격스러운 일이 없었다. 행복했다. 이런 작은 것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 사소한 행복에 대해서 그동안 주워들었던 명언들이 뇌의 저 편에서 활어처럼 튀어 올랐다.
그렇다. 나는 너무도 편한 인생을 살았다. 그리고 우연히 찾아온 사소한 불편이 잊고 있던 편안함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 늘 있었다. 고된 해외 생활 끝에 돌아온 한국에서 김밥천국의 버라이어티 한 메뉴판을 보며 느꼈던 그 감정을 그새 또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화장실에 전등이 들어온다는 생각만으로 하루 종일 들떠서 행복한 나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꽤나 의미심장했다.
그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소한 행복이 이리도 중요한 것일진대, 그 사소한 행복마저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행복이 사소한 것에 있다면, 진정한 불행도 그 사소한 것에 있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꺼진 전등 하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