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자전거를 타야 되거든요?

by 배경자

금요일은 퇴근하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냥 좀 일찍 퇴근을 했다. 유연근무제의 장점은 여기에 있다. 딱히 집에 큰일이 있거나, 누가 아파서 기어 다녀야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조금 책상에서 멀어졌다고 느낄 때 과감하게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것. 물론 모자란 근무시간은 모니터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나의 거북목이 잘 해결해 줄 것이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조각구름들이 둥둥 떠다니고, 푸르른 초록들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게다가 회사 근처에는 한강과 여러 개울들이 이어져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느낌이 든다. 이런 날은 그저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는 내 한 몸을 그 풍경 속으로 던져버려야 한다. 이 아름다움의 일부가 되어서 온 몸으로 풍경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서둘러 출퇴근용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를 한강을 따라 정처 없이 달렸다. 급하게 달리는 터라 오래 달리기에 적당한 복장도 아니었고, 고글도 없어 날파리들의 습격을 받았지만, 그냥 마냥 좋았다. 땀을 뻘뻘 흘려서 집에 도착하니 그 사이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인간은 초원을 뛰어다니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성과가 어떻고, 동료들의 평가가 어떻고 가 무슨 상관인가. 난 지금 자연을 발가벗고 달리는 동물인데.


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일 년 365일 중에서 거의 250일을 일하면서 산다. 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 좁은 모니터를 보면서 끙끙댄다. 내가 일 년에 쉴 수 있는 날은 115일 정도인 셈이다. 그럼 그중에서 이 날 같은 날은 며칠이나 될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장마철에는 비가 온다. 늦여름엔 또 태풍이 온다. 봄에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뿌옇게 가린다. 이렇게 저렇게 빼고 나면, 오늘 같은 날은 일 년 중에서도 열흘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살지만,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돈 보다도 훨씬 더 소중한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돈을 번다는 이유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곤 한다. 과거 성장이 중시되던 시기에는 공공연히 포기를 강요당하곤 했다. 지금은 주 5일제도 시행되고, 또 우리 회사처럼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는 등,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 유행이 불기도 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하자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돈을 번다는 이유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는 가족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한가롭게 한강을 달리는 것이 될 것이다. 또 누군가에는 그게 반려동물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니 남이 맞다, 틀리다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터가 이런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하면, 아직도 조금 더 개선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팀장님, 저희 집 고양이가 자꾸 엄마를 찾아서 조금 일찍 들어가 보겠습니다. 팀장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 타게 반차 좀 쓰겠습니다. 팀장님, 오늘은 책을 읽고 싶어서 연차를 쓰겠습니다. 팀장님, 오늘은 도저히 일할 마음이 안 생겨서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물론 여럿이 같이 진행하는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나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주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선에서 잘 조율을 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이 글은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를 쓰면서도, 제도적으로 보장된 유연근무를 하면서도, 항상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것 마냥 이유를 만들어 내기 급급한 나 같은 직장인들을 위한 글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을 때 삶의 만족도는 올라간다. 그리고 그래야 일도 더 잘될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어로(Aero)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