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과 발전
며칠 전에 정말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탔다. 사실 출퇴근할 때 늘 자전거를 타니까 오래간만에 탔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전거는 이동 수단으로써 자전거가 아닌, 순수히 목적으로서의 자전거 타기를 말한다. 겨우 내내 추워서 멀리하던 자전거를 꺼내서 오랜만에 라이딩을 했다. 작년 10월의 국토종주 이후에 짧은 거리를 두어 번 타고는 처음 타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가볍게 20km 정도를 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10분 정도 자전거를 타서 그런가 그렇게 몸이 엉망진창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다시 또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그게 오늘의 라이딩. 지난번에 몸 상태도 봤겠다, 괜찮을 것 같아서 50km 정도 타는 것으로 목표를 정했다. 그래도 또 무리하다가 한 순간에 길바닥에 드러누울 수 있으니 최대한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파워를 조절하면서 탔다. 오늘도 날이 참 따뜻해서 가지고 나간 쪽모자나 장갑, 바람막이들은 출발하자마자 벗어버리고 탔다. 너무 갑작스럽게 봄이 오는 것 같아서 좋으면서도 조금 얼떨떨하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진즉에 시즌을 시작한 라이더들이 참 많았다. 단체로 삼삼오오 몰려 타는 분들과 적당히 거리도 두고 추월도 하면서 기분 좋게 탔다. 요즘은 즈위프트와 스마트 로라 보급률이 많이 올라간 것이 느껴진다. 코로나 영향도 있을 테고. 하여간 덕분에 겨울에 자전거를 잠시 쉰다는 이 큰 트렌드가 많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되려 겨울 시즌에 더 열심히 실내에서 자전거를 탄 덕분에 2,3월부터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주변에서 꽤 보인다. 기술의 발전이 체감되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 지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매년 초기화라는 역풍을 맞고 있지만, 그래도 제법 짬이 찼는지 기본 실력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2,3월에는 잔뜩 불어난 체중과 그에 반비례해서 줄어버린 근력을 체감하면서 새해를 시작하는 이 기분도 꽤나 익숙하다. 열심히 또 타다 보면 가을쯤에는 예전의 기량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삶에 익숙한 주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자전거 타는 것의 큰 즐거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에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정착과 발전이다. 적합한 단어가 생각은 안 나지만 그렇다. 발전이라는 단어부터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하루하루 꾸준히 발전해 나가서 먼 미래에 봤을 때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다. 짧은 시간에 도달할 수 있는 목표보다는 오랜 시간 갈고닦은 실력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정착이라는 단어는 그 대상에 대한 표현이다. 그것이 경제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사회적 모습에 의한 것도 아니다. 자연인으로서 나의 취향과 색깔을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오직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유용하게 쓰이기 위한 것은 정착과 발전의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새로운 정보를 얻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영어를 익히는 것은 그 대상이 되지만, 단순히 직장에서의 업무 효율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직장이라는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무의미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직장에서의 쓸모를 위해 하는 노력에 대해서 정착과 발전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다.
자전거는 대표적인 정착과 발전의 대상이다. 자전거가 없는 나의 삶이라는 것은 생각하기가 어렵다. 자연인으로서 나의 취향과 색깔을 자전거만큼 잘 반영하는 것이 아직은 없다. 자전거는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타는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면 행복하다. 그러니 평생 자전거를 오래 타면서 이 자전거에 대한 나의 취향을 점점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면 나의 인생이 꽤나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자전거와 비슷한 것이 글쓰기다. 이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고 효용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글을 써가는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온다. 그리고 십 년, 이십 년을 넘게 꾸준히 글을 쓰면서 사는 것이 나라는 사람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 인생의 일부분을 바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것들에 정착하고, 이를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자전거와 글쓰기가 그 대상이다. 조금씩 늘어나는 것도 좋겠다.
철없는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내가 되었다. 내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든 정답이 있겠냐만 그래도 이왕이면 좀 더 의미 있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늘 상대적인 비교를 가져오는 물질적인 것들과는 거리를 둘 것. 이왕이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삶을 살 것. 오랫동안 꾸준하게 취향을 발전시켜 삶의 만족감이 점점 커질 수 있도록 할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자전거와 글쓰기는 내 삶의 좋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라이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역풍이 심하게 불어서 금방 퍼졌다. 아무래도 조금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처음 출발할 때 파워의 절반 정도로 간신히 집으로 복귀했다. 온몸의 근육들이 아우성을 친다. 그래도 기분이 좋으니 다 용서가 된다. 작년은 야심 차게 시즌 시작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못 탔다. 올 시즌은 2020년의 영광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즌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글쓰기에 대한 영감도 꽤 생기게 된다. 올 시즌엔 두 가지를 잘 해낼 것이라는 각오를 시즌 온 라이딩을 하며 다져보았다. 이상 라이딩 일기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