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경자 Oct 08. 2021

자전거

국토종주를 앞두고

어릴 때부터 사실 바퀴 달린 것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거의 안 타본 것들이 없었던 것 같다. 자전거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인라인 스케이트와 킥보드, 힐리스를 매일 같이 타고 다녔다. 대학교에 와서는 당연히 중고 바이크를 구입해서 한 동안 탔다. 지금은 얌전하게 운전만 하고 가끔 자전거를 타는 것으로 바퀴에 대한 갈증을 풀고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내 인생은 어찌 되었든 굉장히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운동을 싫어하던 내가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몸이 생각보다 훨씬 건강해졌으며, 날로 늘어가는 실력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냥 집에서 시간이나 보내던 게으른 사람에서, 야외 활동을 찾아서 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자전거가 좋은 이유는 무척이나 많지만, 크게 생각해보면 아래와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1. 스피드


내가 바퀴 달린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스피드다. 그런데 이 스피드라는 것이 시속 100킬로를 넘나드는 그런 스피드는 분명히 아니다. 달리는 것보다 약간 빠른 정도의 스피드.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머리를 들썩이게 하는 정도의 스피드. 그 스피드가 뭔가 굉장한 매력이 있다.


바퀴 달린 것들은 관성으로 인해 추진력을 주고 난 다음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아도 달리는 순간이 있다. 추진력은 상실되어 순간적으로 가속도는 낮아지지만 속도는 유지되는 시점. 기분 좋은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좋다. 왜 인지는 모르겠다.


2. 명상


나는 생각이 많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주로 걱정으로 이어지고, 과거에 대한 생각은 주로 후회로 이어진다. 그래서 항상 감정을 소모하는 시간이 잦다. 자전거는 그런 나의 무의식을 조금 내려놓고 뇌를 쉴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퀴를 굴리는 것은 흔히 말하는 알아차림의 한 방법이 된다.


동양철학이나 불교, 혹은 아들러 심리학 같은 곳에서 이야기하는 것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자전거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서 내 마음이 다른 곳을 떠도는 것을 막고,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한다. 몇 시간이고 달리고 나면, 오랜 시간 명상을 한 것 같은 효과가 있다.


3. 여행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단순히 여행을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 여행보다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상하고 계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은 그런 상상과 계획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 셈이다.


자전거는 그 행위 자체가 공간의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여행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헬스장에서의 운동은 운동의 종류와 강도, 지속 시간 정도가 변수라고 하면, 자전거는 운동의 종류는 단순해지지만 장소의 이동이 변수로 추가된다. 그리고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것은 상상과 계획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다.


4. 자연


자연은 나에게 늘 좋은 기운을 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연이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경쟁하고 또 경쟁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그 어떤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감탄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늘 나의 어두운 부분을 건드리게 된다. 질투라고 표현할 수 도 있고,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은 그런 것이 없다. 그저 순수한 경탄만이 존재한다. 어떤 것을 100% 즐길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연만이 유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전거는 그 자연 속으로 완전히 뛰어들 수 있는 도구다. 마치 번지점프처럼 자전거 하나를 안전로프 삼아서 그렇게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5. 목적과 수단


자전거는 목적지가 있다. 하지만 그 목적지가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왜냐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남아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누군가의 끝이, 그저 단순한 반환점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저 모든 것은 과정일 뿐이라는.


자전거에서 목적지는 그저 수단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목적지를 정한다. 나의 인생이 지나치게 성취지향으로 가고 있을 때 자전거 타기는 성취라는 것은 결국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6. 운동


자전거는 생각보다 힘든 운동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동시에 좋은 운동이기도 하다. 본인의 체력에 맞게 시작할 수 있어서 진입 장벽이 낮고, 유산소와 무산소가 어우러져 운동 효과도 높다. 게다가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심폐, 종아리, 하체 근육 발달에 유리하다. 또한 관절의 부담이 적어서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다.


자전거를 본격적인 취미로 가진 지도 5년이 넘었다.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은 것이 아쉬울 만큼 자전거는 나에게 이제 뗄 수 없는 삶이 한 부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악기에 비유하곤 했다. 집 한 구석에 두고 한 번씩 생각나면 연주하는 악기. 가끔 조금 소홀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연주하게 되는 악기. 자전거도 그런 것 같다.


만약 삶이 조금 우울하고 힘든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주저 없이 자전거를 시작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비싼 자전거도 필요 없다. 그저 굴러만 가는 자전거라면 충분하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유 자전거도 좋다. 그래도 뭔가 망설여지는 분들에게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을 전한다. "자전거를 사라. 살아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카오는 왜 부정적 기업이 되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