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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경자 Jan 21. 2022

개복치 알러지

어릴 때 수학여행을 가던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여학생이 복숭아를 먹었는데, 본인도 몰랐던 복숭아 알러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 붉게 변했고, 많이 부었다. 선생님이 그 친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다른 친구들이 그 친구를 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나는 그냥 순수한 궁금증에서 그 친구의 얼굴이 무척 궁금했지만, 꾹 참았던 생각이 난다.


땅콩 알러지를 알게 된 것은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였다. 땅콩을 먹여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그전까지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땅콩 알러지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뤄지는 것이 꽤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땅콩 알러지를 검색해 보고는 했다.


지금야 식품 관련 알러지 유발 물질에 대한 표기가 잘 지켜지고 있지만,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알러지 관련 정보가 부족했다. 사회적으로 식품 알러지에 대한 유해성이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 조금씩 알러지 유발 식품에 대한 정보들이 공유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자주 가던 설렁탕 집에서 땅콩버터를 이용한다는 것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알러지들은 개인의 선천적인 기질의 문제이고, 또 사회적으로 그리 흔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배려를 받지 못했던 측면이 컸다. 하지만 사회가 성숙해가고 구성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게 되면서 소수의 알러지 보유자들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선천적으로 감정이 섬세한, 이른바 멘탈이 약한 사람들도 알러지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개복치 알러지라고 하고 싶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수이고, 선천적 기질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알러지 보유자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들의 건강,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건강에 대한 배려는 신체적인 알러지에 비해서 매우 부족하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직장 생활에도 적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거대한 흐름 속에서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한다는 사실을 굉장히 당연히 받아들였지만, 사실 취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같은 개복치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은 엄밀히 말해서 직장 생활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직장이라기보다는 단체 생활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알러지가 있으면 그 음식은 독이 된다. 직장 생활도 그렇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이 그 조직의 생활을 견디는 데에 취약하다면, 그 직장은 그 개인에게는 더 이상 좋은 직장이 될 수 없다. 타고난 체질을 부정하거나, 애써 무시하면서 계속 땅콩을 먹는 것이 우리 몸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듯, 개복치 알러지를 부정하고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우리 모두가 이런 개복치 알러지를 이해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에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개복치의 아픔은 어쩌면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성장통일지도 모르겠다. 알러지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의 제거가 어렵더라도, 알러지 증상에 대한 적절한 치료라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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